왜 다시 카미노를 걸으려 하나?

by 장석규

출발지 생장피에드포르에서(2023년 9월 7일)

‘프랑스 길’ 출발지인 생장피에드포르에 마침내

입성했다. ‘마침내’라는 말을 굳이 쓰는 데는 깊은 사연이 있다. 10년 전, 그러니까 2013년 9월 8일부터 33일 동안 890여 km를 걸었던 경험은 내 인생에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 나는 ‘카미노 병’에 걸려 들었다. 마치 히말라야에 한 번 다녀온 사람이 앓는 ‘히말라야 병’ 같은 것 이상이었다.

다시 ‘카미노’를 걷겠다고 세 차례나 준비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 왕복 항공권까지 끊어 놓고 기다리는 중에 대학교 강단에 설 기회가 생기기도 했고,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전 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에 순례길은 그저 꿈에서나 걸어야 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마침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파리에 도착해서는 하루를 더 묵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긴 줄을 서면서까지 모나리자를 만나 그녀의 잔잔한 미소를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묵상하고 기도하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다니고 싶은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10년 전 감당하기 힘든 짐을 걸머지고 걸었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마음의 짐을 좀 덜고 걷고 싶다.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카미노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너무 가볍게만 걸어서도 안 된다. 스스로 ‘카미노 원칙’ 일곱 가지를 정한 것은 그러한 다짐을 반영한 것이다.


나의 카미노 7원칙

- 가급적 혼자 걷는다

- 말을 적게 한다

- 짐은 내가 지고, 숙소 예약을 하지 않는다

- 맛집을 찾지 않는다

- 매일 남을 위해 기도한다

- 일일 한 주제씩 묵상한다

- 일기를 쓴다(메모, 녹음, 영상)


순례길은 순례길다워야 한다. 천 년을 이어온 이 길은 나 혼자만의 길이 아니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보존되어 더 많은 이들에게 좋은 길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길을 사랑하고, 이 길을 걷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의 길이 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그저 이 길을 잠시 지나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생장에 도착하자마자 공립 알베르게, 일명 55번 알베르게로 가서 스무 번째로 침대를 배정받았다.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은 출발 전에 한국 순례자 협회에서 미리 발급받았다. 덕분에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긴 줄을 서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바로 알베르게로 향한 덕분에 경쟁이 심하다는 ‘55번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으니, 일단 첫출발은 순조로운 셈이다.

알베르게에 짐을 풀어놓고 성당에 가서 잠시 묵상 시간을 가졌다. 카미노는 그리움이 뭉친 길이다. 나는 왜 다시 카미노를 걷고자 하는가. 10년 전 내 카미노의 간절한 기도와는 상관없이 하늘의 별이 된 손자 시후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지금도 몹쓸 병에 시달리는 친구의 아들 ○○ 군을 위해, 고교 친구 ○○을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한다. ○○ 군은 조혈 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스무 번도 넘게 항암치료를 받고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은 늘 가까이 지내던 고교 친구인데, 몇 년 전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반복하는 바람에 면역력이 갓난아이처럼 약해져 외부 출타가 제한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듯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매일 길을 걸으며 기도하고 하늘의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생장을 달구던 햇볕이 저녁 어스름에 기울기 시작한다. 그 옛날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할 때 넘었다는 피레네산맥 고갯길도 서서히 어둠에 잠기고 있다. 이제 침낭에 들어가 단잠을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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