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길 3일 차 / 9월 10일(일), 쾌청
트리니다드 데 아레 ~ 푸엔테 라 레이나 / 28.5km, 누적 거리 82.5km
발이 부르트고 말았다. '마침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드디어'라고 해야 할까. 물집이 생긴 곳은 양쪽 발 거의 같은 부위로, 뒤꿈치나 발바닥이 아닌 복숭아뼈를 기준으로 좌우 45도 방향의 애매한 곳이었다. 목을 돌리고 무릎 안쪽을 바닥에 붙인 채 발을 비틀어야 겨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였다. 물집의 전조는 어제부터 나타났다. 오른발을 정상적으로 딛기 불편할 정도여서 조심했는데, 오늘은 왼발까지 동시에 부르텄다. 어제 라라소아냐에서 알베르게 문제가 생겼을 때 10km가량을 더 걸어 다음 마을로 가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발 상태에 자신이 없어 결국 '축지법'을 썼던 것이었다.
아침에 짐을 꾸려 알베르게를 나설 때부터 발을 내딛기가 불편했다. 뒤꿈치부터 딛지 못하고 마치 '고양이 걸음'처럼 앞발로 살살 디뎌야 했다. 이런 상태로 '용서의 언덕'이라 불리는 페르돈 봉(Alto del Perdón)을 넘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페르돈 봉을 지나서도 우테르가(Uterga), 무루사발(Muruzábal), 오바노스(Obanos) 등 마을까지는 마땅히 묵을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30km 가까이 걸어야 했기에 은근히 염려되었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4.6km를 걸어 팜플로나 시내로 들어섰다. 예상보다 이십여 분이 더 걸렸다. 도착한 팜플로나 골목길은 너저분하기 그지없었다. 빈 음료수통, 맥주병, 과자 봉지, 먹다 남은 음식 쓰레기 등 사람들이 버릴 수 있는 온갖 쓰레기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토요일 밤의 팜플로나 시내가 어땠을지 쉽게 연상할 수 있었다. 소몰이 축제로 유명한 이곳의 골목 좌우에 즐비한 식당이나 바르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먹고 마시며 흥청댔으리라. 시골에 사는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서울 종로나 남대문 뒷골목도 비슷할까?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골목길 여기저기에서는 청소차들이 물을 뿌려가며 대청소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페인이 깨끗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렇게 새벽마다 청소 시스템이 잘 가동되기 때문이 아닐까. 이용하는 사람들이 마구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지만, 결국은 시민 각자가 부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팜플로나의 전원 지역인 시수르 메노르(Cizur Menor)를 지나 페르돈 봉으로 향했다. 'Perdón'은 스페인어로 '용서'를 뜻한다. 대부분의 순례자는 힘들게 페르돈 봉에 올라 순례자 형상의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전망 좋은 곳에 앉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길을 나선다. 그들은 페르돈 봉을 오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주일이지만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나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거라고 믿고 싶지만, 별로 자신은 없다.
'페르돈 봉'이라 이름을 붙인 뜻은 무엇일까. 나 스스로 용서를 구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남을 다 용서하라는 의미일까. 어쩌면 용서를 받든 용서를 하든, 마음속 맺힌 것들을 다 풀고 순례길을 가벼운 마음으로 걸으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나는 용서받아야 할 사람인가, 아니면 남을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인가. 내게 용서받을 일이 많은가, 아니면 내가 용서해 줄 일이 많은가. 하나님과의 관계, 아내를 비롯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옛 상사나 부하들, 후배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서도 알아채지 못했거나, 알고서도 모른 체하며 지나침으로써 또 다른 상처를 주었던 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가깝게 지냈던 사람일수록 그들에게 준 상처는 더 깊었으리라.
돌이켜보면 나는 누군가를 용서하기보다는 용서받아야 할 자이다. 내가 저지른 잘못들, 내가 지은 죄들을 낱낱이 고백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비록 늦었지만 나에게 상처받은 이들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할 자격이 내게는 있는 것일까. 용서는 어쩌면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먼저 자기 자신을 성찰하여 잘못을 깨닫고 깊이 뉘우친 뒤,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수 있으리라.
페르돈 봉으로 향하는 길 막바지에 있는 마을 사리끼에기(Zariquiegui)로 들어가는 길은 폭이 4~5미터나 될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순례자 서너 명이 나란히 걸어도 충분히 여유로운 길이었다. '용서의 언덕으로 가는 길이니까 이렇게 널찍해야겠지. 용서는 무엇보다 마음이 관대해야 가능한 것. 좁쌀 같은 마음으로는 상대를 어찌 용서할 수 있겠어.'
사리끼에기 성당에 들러 잠시 묵상 기도를 올렸다. 가족과 친구들, 교회 식구들, 그리고 특히 투병 중인 친한 동기생의 아들과 친구 ○○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비로소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을을 지나 페르돈 봉을 향해 본격적으로 올라가는 길, 이제부터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길이 좁아진다. 밤새 내린 비로 질척이는 곳이 꽤 많았다. 앞에 가는 순례자를 졸졸 따라가야만 했다. 성경에서 구원에 이르는 길이 원래 좁다고 했던가. 어쩌면 구원의 문이 열린다 해도 그 문은 좁은 길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인지 모른다.
페르돈 봉에 오르는 길에 있는 '포기의 샘'(Fuente del Perdón)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물병에 있던 물을 버리고 졸졸 흐르는 샘물로 물병을 다시 채웠다. '용서를 받거나 용서하려면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채워 넣었구나. 아직 마음에 가득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걸까.'
드디어 페르돈 봉 정상에 올랐다. 쾌청한 날씨 아래 산 능선마다 풍력발전기가 길게 늘어섰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은 저마다 순례자 형상의 여러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전망 좋은 곳에 앉거나 누워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나는 어제 택시를 합승했던 프랑스 친구 장 탕가이(Jean Tanguy)를 만나 서로 인증사진을 찍어주었다.
하산 길은 악명 높은 '호박돌 길'이었다. 뒹구는 돌들이 페르돈 봉에서 쉬느라 풀어진 순례자들의 마음을 다시 각성시키는 듯했다.
7시간 40분 만에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 도착했다. 이름처럼 '왕비의 다리'가 있는 작은 도시였다. 산초 3세의 부인 도냐 마요르(Doña Mayor)를 기려 붙인 다리 이름이 도시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알베르게에 여장을 풀고 보니 한국인 순례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10년 전에는 한국인을 어쩌다 만나는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꽤 자주 만나는 편이다. 부엌에서 라면 냄새나 삼겹살 굽는 냄새가 나면 여지없이 한국인들이었다. 그런데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먼저 인사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나의 경우, 편히 있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면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주책없이 끼어든다는 인상을 줄까 염려되기 때문이었다. 혹은 그들은 나를 일본인이나 중국 사람으로 보고 말을 건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순례길에서는 맞고 틀리고 가 없는 것 아닌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