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걸음은 헛되지 않아

by 장석규

프랑스 길 9일 차 / 9월 16일(토), 흐림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 34.1km, 누적 거리 239.7km


어제저녁 미리 준비해 둔 컵라면과 복숭아 한 개를 먹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시내를 벗어나자 아직 캄캄한 밤이 피부로 와닿았다. 한 시간가량을 걸었을 때였다. 앞뒤 순례자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헤드 랜턴도 켜지 않은 채 오직 걷기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전날 본 안내 책자에는 내내 큰길을 따라간다고 했는데, 눈앞에는 산 능선만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낼 뿐이었다. 오히려 산길로 향하고 있던 것이다. 곧바로 앱을 열어 지도를 확인했다. 순례길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아직 야심한 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시간, 흐린 날씨 탓에 별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감각에만 의존해 걷다 보니 가야 할 길을 놓치고 엉뚱한 길로 접어든 것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원점을 향해 걸음을 돌렸다. 발걸음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백... 삼백...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길은 더 멀게 느껴졌다. 천... 천오백... 어스름 속에 비로소 갈림길이 보였다. 1km가 넘는 잘못된 길을 열심히 걷고 있었던 것이다. 왕복으로 치면 2.2km를 헛걸음한 셈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그냥 계속 갔다면 얼마나 더 고생했을까.

무슨 일이든 잘못되었다고 느껴질 때는 즉시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하고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느낌이 들면 망설이지 말고 즉시 확인하고, 잘못된 길이라면 미련 없이 돌아서야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잘못된 길을 계속 가다가는 그만큼 더 고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꼭두새벽,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시간에 2.2km를 헛걸음한 것은 따지고 보면 결코 헛걸음이 아니다. 잘못을 깨달으면 곧바로 인정하고 바른길을 택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겸손이요 지혜가 아니겠는가.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허다하다. 요즘 세상에는 잘못한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자기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고집을 피우며 '마이 웨이'를 고수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다. 돌아설 줄 아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돌아설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다.


애초 출발할 때는 22.2km 지점인 벨로라도(Belorado)에 머물기로 마음먹었었다. 10년 전 수영장도 있고 가성비 좋은 사설 알베르게에 묵었던 좋은 기억이 있어 그곳에서 적당히 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11시 반에 벨로라도에 도착해 보니 알베르게 문 여는 시간이 오후 1시였다. 한 시간 반이나 기다리느니 그만큼 더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 묵을 만한 곳은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라는 마을이었다. 결국 12km를 더 걸었고, 오후 2시 20분에 산 안톤 호스텔(San Anton Hostel)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숙박비 15유로 + 저녁 식사 18유로)

알베르게 입구에서 엊그제 길에서 만났던 샬럿(Charlotte)이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손가락으로 알베르게를 가리키며 이곳에 묵으라고 알려주었다. 스치는 만남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다시 만나니 즐거웠다.

오늘 길은 대체로 로그로뇨와 부르고스를 연결하는 N-120번 도로를 따라 이어졌다. 길 좌우로는 밀밭과 해바라기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벨로라도를 지나면서 라 리오하(La Rioja) 지역을 벗어나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 지역으로 들어섰다. 비로소 메세타(Meseta) 지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항상 메세타를 통과하는 구간을 다시 걷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10년 전 메세타 길 위에서 나는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할 수 있었고, 내 한계와 정면으로 맞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메세타라는 그 공간과 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의 느낌과 깨달음을 담아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무는 외롭지 않다》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내 손자 시후는 그 당시 절체절명의 벼랑 끝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와 같았다. 잘 생기고 똑똑하며 총기 넘치던 아이가 뇌종양에 걸리면서 하루하루 무너져 가는 모습을 차마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 나 또한 시후와 같이 벼랑 끝에 서기를 자처했다. 할아버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마치 벼랑 끝에 서서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훅 쓰러질 것 같은 시후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도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카미노 위에서 기도하는 것을 택했다.


작열하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메세타를 걸을 때, 눈앞에 펼쳐진 지평선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지평선은 가도 가도 자꾸만 물러났다. 마치 나와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지평선은 도저히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꿈과 같았다. 그런 광경 속에서 나는 깊은 '절대고독'감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길가에 피어난 작디작은 한 송이 들꽃도, 때로는 저 멀리 서서 바람에 흔들거리며 나를 응원해 주는 한 그루 나무도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메세타는 바로 그렇게 나를 카미노로 다시 이끌어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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