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길 8일 차 / 9월 15일(금), 흐리고 비
나헤라 ~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 21km, 205.6km
새벽 3시 반쯤 잠에서 깼다. 한두 시간 더 자려고 노력했지만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럴 바엔 일찍 나서는 게 낫겠다 싶어 조용히 짐을 챙겨 식당으로 나왔다. 미리 사둔 몇 가지 먹거리(바나나, 채소 샐러드, 크루아상, 하몽)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알베르게를 나선 시간은 새벽 다섯 시,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11세기에서 12세기 나바라 왕국의 수도였으나 지금은 패망과 몰락의 역사를 간증하는 듯한 인구 약 7천 명의 작은 도시, 나헤라 시가지를 벗어나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 언덕길에 오르고부터는 아무런 인공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달은 보이지 않았고 오늘따라 별빛도 기세가 꺾인 듯 희미했다. 옅은 구름이 별들을 시샘이라도 하는 것일까. 헤드 랜턴도 켜지 않은 채 오롯이 감각에 의존해 걸었다. 오른발 뒤꿈치가 자갈돌에 자극받아 괴로울 뿐이었다.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카미노는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 시간 반을 그렇게 아무런 불빛도 없는 어둠 속을 걸었다. 인위적인 빛 한 줄기 없는 어둠 속에서 저벅거리는 내 발소리와 숨찬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진동(無振動)의 세계'를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꿈결 같은 세상 속에서 나는 행복감을 아낌없이 누렸다. 캄캄한 새벽길은 신이 내리는 선물이자, 절절한 기도에 응답하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소다.
아소프라(Azofra) 마을에 들어서는데 문을 연 바르가 보였다. 얼른 들어가 코르타도(Cortado) 한 잔을 주문했다. 에스프레소 투 샷에 우유를 조금 섞은, 에스프레소와 카페라테의 중간 맛인 스페인 특유의 커피다. 순례자들을 위해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바르 주인의 부지런함에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는 것에 만족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여섯 시 사십 분, 아직 사위는 어두웠다.
9시가 다 되어갈 무렵, 시루에냐(Cirueña) 마을 초입에 골프장이 보였다. 프랑스 길 800km 여정 가운데 유일하게 지나는 골프장이다. 라운딩 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클럽하우스 안에 두 사람만 보일 뿐이었다. 한국의 골프장 같으면 내장객들로 한창 붐빌 시간일 텐데, 스페인에서는 골프에 대한 인식이 사뭇 다른 모양이었다.
시루에냐 마을을 지나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에 이르는 길은 포도밭이 어쩌다 눈에 띄고 해바라기밭이 주를 이루었다. 이미 수확이 끝난 밀밭은 갈색 대궁들만 까칠하게 서 있었다. 마치 젊은 시절 내가 하고 다니던 스포츠형 머리를 닮았다. '나도 남들에게 저렇듯 까칠해 보였겠지?'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시내에 진입하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목적지에 다 와서 내리기 시작했으니 비는 맞지 않았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11시에 문을 여는 알베르게 앞에서 40여 분을 기다려 체크인했다. 알베르게에서 씻고 빨래를 마친 뒤 쉬는 동안 가장 중요한 일은 발을 돌보는 것이었다. 카미노 둘째 날부터 부르트기 시작한 부위에 붙이고 다니던 헝겊 반창고를 뜯어보았다. 물집이 더 번져 있었다. 바늘로 조심스럽게 물을 짜내고 소독했다. 당분간 통증이 계속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 참고 걷는 수밖에….'
산토 도밍고라는 도시 이름은 원래 도밍고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도밍고는 본래 학식이 높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순례길을 개척하고 정비하는 데 헌신하여 '길 위의 성자 도밍고(Santo Domingo en el camino)'라 불릴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산토 도밍고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수탉과 암탉의 기적' 이야기다.
순례자 부부와 아들이 한 여관에 묵었는데, 여관집 딸이 아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순례자 아들이 그 딸의 마음을 모르는 체하자, 딸은 그 청년이 괘씸하다고 여겨 금 술잔을 청년의 가방에 몰래 넣어두고는 그가 훔쳤다고 고해바쳤다. 청년은 곧바로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순례길을 이어갔다. 순례를 마치고 산토 도밍고로 돌아와 보니, 아들은 아직 교수대에 매달려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살아 있었다. 부모는 재판관을 찾아갔으나, 재판관은 냉정하게 말했다. "당신 아들은 지금 내가 먹으려는 닭고기처럼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접시에 있던 구운 닭들이 일어나 큰 소리로 울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본 재판관은 그 청년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음을 깨닫고 서둘러 교수대로 달려가 청년을 내려주고 사면해 주었다는 이야기다. (존 브리얼리 저, 신선해 옮김 《산티아고 가이드북》 발췌)
산토 도밍고 덕분에 살아난 순례자 청년의 이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면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전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이야기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내가 이 길을 걸었던 이유도 생사를 결정짓는 갈림길에 섰던 네 살짜리 손자를 위해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순례길에 참으로 많은 눈물을 뿌렸다. 총명하고 예쁘기만 하던 아이가 차츰 병마에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만 볼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로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마음에 택한 것이 순례길을 걸으며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를 고쳐 달라', '제발 그 아이 좀 살려주세요' 하고 매달려 눈물로 호소하는 것 외에는... 그 손주가 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카미노 순례를 택했다. 그 때 눈물로 뿌린 씨앗이 어떻게 싹트고 자라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