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비바람 뒤에 찾아드는 것

by 장석규

프랑스 길 14일 차 / 9월 21일(목), 오전 내내 비/바람

비야멘테로 데 캄포스 ~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 / 26.8km, 누적 거리 379km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Calzadilla de la Cueza)의 한 알베르게에서 쉬고 있다. 식당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알베르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홍차를 한 잔 마신다. 손에 전달되는 찻잔의 온기가 마음을 녹여주는 듯하다. 향긋하면서도 조금은 텁텁한 맛, 이것 또한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나는 사실 오늘 걸었던 구간에 이끌려 이번 카미노를 다시 걷게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카리온(Carrión)에서 이곳까지 이르는 17.1km 구간. 10년 전 나는 이 길에서 몇 가지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황무하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갈색 벌판, 그런 듯하면서도 결코 황폐하게 버려지지 않은 대지. 그 사이로 난 길을 작열하는 태양 빛을 그대로 쬐며 걸어야 했다. 금방이라도 온몸을 태울 듯한 햇볕을 피해 들어갈 만한 나무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순례자들은 이 길의 가혹함을 미리 알고 어디론가 피해 간 것일까, 앞뒤로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절대고독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처절하게 맛보았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갔고 영혼 역시 점점 피폐해질 무렵,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구름 한 조각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서쪽 끝에 보이는 지평선은 다가갈수록 자꾸만 멀어져 갔다. 그러나 나는 그 광활함 속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외롭지 않았다. 길가에 피어난 들꽃 한 송이가 나를 보며 웃는 듯 보였고, 고원에 부는 바람에 길든 억센 들풀 역시 손을 흔들어 응원을 보내는 듯 하늘거렸다. 나는 그들 덕분에 힘을 내 쓰러지지 않고 오늘 내가 묵는 이 알베르게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때와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새벽 5시 50분, 아직 먼동이 트기 전이었다. 알베르게를 나서자마자 몸을 날려버릴 것 같은 세찬 바람에 뒤뚱거렸다. 하늘을 쳐다보니 먹구름이 잔뜩 낀 데다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 알베르게 철문을 열고 걷기 시작하자 이내 빗방울이 떨어졌다. 배낭을 벗어 판초 우의를 쓰려는데 바람에 펄럭여서 통제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한참 동안 씨름하고 나서야 겨우 판초를 뒤집어쓸 수 있었다. 바람이 더욱 세차지고 빗방울은 신이 난 듯 내 귀청을 때려댔다.

큰 도로 옆으로 이어진 길을 걸어도 걸어도 마을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옷은 이미 젖은 지 오래고 신발마저 빗물이 새 들어 질퍽거렸다. 두 시간 반 만에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에 도착했다. 네거리에 있는 바르에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알베르게에서 나와 아침 식사를 하려는 순례객들로 북적였다. 구석진 곳에 배낭을 벗어놓고 나도 긴 줄에 섰다. 카페 콘 레체를 마시며 식은 몸을 덥히려 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행장에 빗물이 새 들어가지 않도록 다시 한번 단단히 꾸렸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17km 구간은 중간에 마을도 없고 마땅히 쉴 곳도 없는 긴 구간이다. 네 시간 이상을 잘 버텨야 했다. 바르에서 나설 때는 비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다시 비바람이 거세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순례자들은 서로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머리를 숙인 채 앞만 보고 걸을 뿐이었다. 인사말도 건네지 않았다. 이런 날씨에는 그 흔한 ‘올라(Hola!)’나 ‘부엔 카미노(Buen Camino!)’ 하는 말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비로소 날은 밝았지만, 몰아치는 비바람에 얼굴을 제대로 들기 어려웠다. 판초를 뒤집어썼어도 빗물이 새 들어오는 데다 서린 김으로 온몸이 젖어 한기가 점점 심해졌다. 가끔 얼굴을 들어 앞을 내다보려 해도 비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운무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시간이 갈수록 지쳐 걸음걸이는 느려지는데 길마저 질퍽거렸다. 무릎 보호대를 했지만, 다리가 점점 뻐근해지고 마비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중간에 쉼터가 하나 있긴 했다. 자전거 순례자 몇몇이 그곳에 들어가 쉬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핸드폰을 열어 기온을 확인하니 영상 5도였다. 10도 이상 급격히 떨어진 상태였다. 잠시라도 멈추면 안 되었다. 계속 움직여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바로 이럴 때로구나' 싶었다.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와 훌쩍였다. 콧물이 빗물과 범벅이 되어 입으로 들어가고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겨우겨우 빗방울을 피해 가며 영상 편지를 찍어 보냈다. "우리가 살다 보면 갖은 시련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참고 견디면 보람도 느끼고 기쁨도 맛볼 수 있고, 멋진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참지 못하면 그저 그런 삶을 사는 데 그칠 뿐이다." 평범한 내용이지만, 카미노를 걸으며 혹독한 시련을 직접 마주하는 아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새벽부터 비바람에 일그러진 아비 얼굴을 보며 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10년 전 이 길을 걸었던 때와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다. 땡볕 아래 그늘 하나 없이 말 그대로 가혹하고 잔인하기까지 했던 거칠고 메마른 길. 이번에는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길. 얼마나 대조적인가.


11시 반에 잠깐 해가 얼굴을 내미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모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운무에 가려졌던 지평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지평선을 손으로 잡으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며 길을 따라갈 뿐이었다. 여섯 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길을 걷고 있을 즈음, 마침내 등 뒤로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비로소 판초 우의를 벗어도 되었다. 오른쪽 무릎이 점점 뻣뻣해질 무렵, 계곡에 포근하게 들어앉은 오아시스 같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휴! 살았다. 역시 삶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14-1.비 오던 날.jpg

12시 반, 비바람 속에 여섯 시간 반을 걷고서야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숙박비 1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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