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길 13일 차 / 9월 20일(수), 맑음
카스트로헤리스 ~ 비야멘테로 데 캄포스 / 34.3km, 누적 거리 352.2km
프랑스 길 13일 차, 카스트로헤리스를 떠나는 아침. 원래 계획은 25킬로미터 지점의 프로미스타에서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이른 시간 출발하여 순조롭게 길을 나섰고, 정오 무렵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다. 하지만 알베르게 문이 열기까지는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주머니에 넣어둔 사과 한 개로 간단히 허기를 달랬다. 그러다 문득 '이럴 바엔 조금 더 가볼까?' 하는 충동이 일었다. 안내 앱을 보니 3.6킬로미터 앞에 또 다른 마을에 두 개의 알베르게가 있다는 정보가 보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신발 끈을 묶고 길을 나섰다. 한 시간가량 걸어 마을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알베르게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는 다른 순례자도 눈에 띄었다. 구글 지도 앱을 켜고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여전히 알베르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니, 알베르게는 이미 문을 닫았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온몸의 힘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미 30킬로미터 가까이 걸어 지칠 대로 지쳤는데, 여기서 더 가야 한다니.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저 묵묵히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마음을 다잡았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점심은 사과 한 개가 전부였다. 배는 고팠고, 오늘따라 무릎 통증도 가볍지 않았다. 프로미스타 이후로 계속해서 큰 도로 옆의 카미노를 따라 걷고 있었다. 순례길은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저 아득한 지평선 끝 소실점으로 수렴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듯 보였다. 길 양옆으로는 나무 몇 그루만이 외롭게 서 있을 뿐, 시야는 탁 트여 있었지만 정작 위안이 될 만한 그늘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소실점과 지평선, 그것은 눈에 보이지만 결코 쉽게 도달할 수 없는, 혹은 도달해도 실체가 없는 허상처럼 느껴졌다.
발걸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차라리 앞이 보이지 않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저 멀리 보이는 마을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가늠되지 않아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문득, '우리 인생도 이와 같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는 모르기에 걸어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앞으로 펼쳐질 길의 모든 어려움을 미리 안다면, 지레 겁먹고 주저앉거나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잘 모르기에, 때로는 무모하리만큼 용감하게 발을 내디디는 것 아닐까.
가까스로 레벵가 데 캄포스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바르에 들렀다. 시원한 캔맥주로 목을 축이고 삶은 달걀과 바나나로 허기를 달랬다. 주인에게 물으니 2.2킬로미터 앞에 비야멘테로 데 캄포스라는 마을에 알베르게가 있다고 했다. 배낭을 다시 메고 허리끈을 바짝 조였다. 그곳에 도착한다고 내 한 몸 누울 침대 하나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곳마저 여의치 않다면, 이미 과부하 상태인 몸으로 4킬로미터를 더 걸어야 했다. 오후 두 시 반경, 마침내 비야멘테로 데 캄포스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숨을 헐떡이며 울부짖듯 물었다. "Tienes una cama? (침대 있어요?)" "Si. 네." 젊은 여자 오스피탈레로의 대답은 천둥소리처럼 반갑게 들렸다.
나를 맞이한 오스피탈레로는 26세의 폴리나라는 여인이었다. 큰 눈과 오뚝한 콧날의 전형적인 스페인 여인이었지만, 알베르게는 그녀의 생김새와 달리 다소 어수선하고 너저분했다. 무엇보다 수십 마리의 파리가 피곤한 나의 휴식을 방해했다. 뜨락에는 당나귀와 거위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으니, 파리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더 갈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대로 체크인을 했다.
몸을 씻고 옆 바르에서 보카디요와 카페 콘 레체를 주문했다. 야외 테이블에 음식을 내려놓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거위 한 마리가 달려들더니 내 보카디요 한쪽을 덥석 물고 유유히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쫓아갈 생각조차 못 하고 쓴웃음만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껄껄 웃어댔다. 허기진 배에 거위의 습격까지 겹치니, 피로감은 더욱 깊어졌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다시금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순간이었다. 몸의 컨디션이 썩 좋은 것도 아니었다. 무릎 통증은 견딜 만했지만, 양쪽 발에 잡힌 물집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발 전체로 터덜터덜 걷는 수밖에 없었고, 무릎 보호대도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육체적으로 분명 고행이라면 고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길을 '고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만약 이것이 쓸데없는 고생이라 생각했다면, 800킬로미터의 순례길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거나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힘겨운 메세타 지역을 걸으면서도, 육신의 피로와는 별개로 마음에 찾아드는 자유와 평안은 형언할 수 없었다. 걷는 내내 수시로 '주기도송'을 부르고 이런저런 기도를 올리다 보면, 마치 은혜의 단비가 촉촉이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내 속에 쌓아둔 쓰레기 같은 감정들을 쏟아내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깨달음을 억지로 얻으려 욕심내지도 않았다. 광야 같은 메세타의 영적 의미를 굳이 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이 길이 나에게 주는 모든 것을 온몸과 마음으로 마주하고 싶을 뿐이었다. 흡수될 것은 흡수하고, 토해낼 것은 토해내면서, 그저 그렇게 부딪힘으로써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메세타의 황량한 풍경 속에서 나는 홀로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같았다. 광야에 부는 가느다란 바람에도 위태롭게 흔들리는, 마치 벼랑 끝에 서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나무 말이다. 그동안 나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그늘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내가 만든 작은 그늘에는 아무도 쉬어가려 하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내가 만드는 그늘은 '그늘'이 아니었다. 그렇게 홀로 선 나무, 나는 아무에게도 '오아시스'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메세타의 고독 속에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