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례자 무덤 앞에서

3일 차:2.26. 수요일, 맑음. 기온 6 ~16도

by 장석규

Castilblanco de los Arroyos ~ Almadén de la Plata, 30km


꽤나 힘든 날이었다. 07:20에 출발해서 오후 2:30쯤 Almadén de la Plata에 오기까지 30km나 되는 구간에 마을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중간에 잠시 쉬면서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라도 한 군데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면 Almadén de la Plata는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 같은 마을이다.


Castilblanco를 벗어나서 8km를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야 했다. 팍팍했다. 큰길 가로 난 카미노로 들어서서야 걸음이 가벼워졌다. 어제 잠깐 내린 비로 대지는 촉촉했고 흙길은 부드러워 내 발길을 다 받아주는 듯 느낌이 들었다. 길 좌우측에는 참나무들과 푸르게 자라 있는 밀밭이 주류를 이뤘다. 싱그러운 오전이었다. 그러나 구름 한 점 없이 맑디 맑은 하늘은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운 햇볕으로 바뀌었다.

이어지는 참나무 밭, 농장이라 해야 맞는 게 아닐까? 철조망에는 COTO PRIBADO DE CAZA 팻말이 붙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 엄청난 규모의 땅은 협동조합 소유 아닐까 추측해 본다. 코르크를 생산하는 참나무 농장도 있었다. 처음에는 참나무에 흑색 또는 진한 갈색 페인트를 칠한 건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코르크를 생산하기 위해 껍질을 벗겨낸 흔적이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장면이어서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굴참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이 껍질이 두꺼웠다. 손가락으로 대략 재어 보니 가운데 손가락 길이 정도로 5~6 센티미터는 되었다. 나무들 마다 그렇게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 그런 나무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걷다 보니 이번에는 껍질을 벗겨낸 지 몇 년이 지난 듯 껍질이 다시 부풀어 오르는 나무들이 보였다. 검색을 해보니 코르크나무는 대략 9년이 지나면 다시 껍질을 벗겨낼 수 있도록 회복된다고 한다. 코르크참나무야말로 과연 주고 또 주는 나무, 회복력이 뛰어난 나무임에 틀림없다.

대개의 나무들이 인간들에게 아낌없이 주지만, 참나무야말로 그렇다. 철마다 도토리라는 열매를 맺어 떨구면 우리나라에서는 묵으로 쒀서 먹지만 스페인에서는 돼지 먹이로 유용하게 활용한다고 한다. 참나무 밭에 돼지를 풀어 도토리를 먹여서 품질 우수한 육류를 생산한다. 이른바 이베리코 돼지고기다. 이베리코 돼지고기도 물론 품질에 따라 다르긴 하다지만, 특히 뒷다리살로 만든 하몽(햄)은 명품으로 통한다. 뿐만 아니라 참나무 껍질을 벗겨서 코르크를 생산한다. 코르크용 참나무가 뛰어난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 인간도 기본적인 항상성, 즉 Homeostasis은 누구나 지니고 있다.


순례길에서 가끔 만나는 순례자들의 무덤을 오늘 만났다.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기 직전 칼바리오 고개를 오르면서였다. 해발 55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고도가 낮은 곳에서 올라야 하니 과연 깔딱 고개라 할 만한 곳이었다. 돌 판석에 붙인 아크릴 판에 유명을 달리한 순례자의 이름과 사망한 날짜가 새겨져 있다. '2016년 9월 4일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에 사망하여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갔으니 사도 야고보가 좋아할' 거라는 내용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잠시 묵념을 올렸다. 오늘이 2월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곳까지 다다랐는데, 그는 9월 초에 걸었으니 얼마나 덥고 힘들었을까 짐작이 간다. 더구나 30km 가까운 먼 거리에 쉴 만한 곳 한 군데도 없었으니 이곳까지 온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하루의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순례길에서 쓰러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도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죽어서 한 줌 재가 되어 21.5cm × 21.5cm 유골함에 갇혀 일 년에 한두 번 자녀들이 찾는 추모공원에 안치된들 무슨 위로가 되랴. 차라리 저 사람처럼 순례길에서 쓰러져 길 가에 묻힌다면 대대로 이어지는 순례자들의 마음과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헛된 생각 같아도 그럴듯하지 않은가. 비명횡사라도, 객사라도 그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다.


형제도 떠나고, 마음을 나누던 친구들도 하나 둘 차차 떠나고 있다. 육 남매 가운데 내가 다섯째인데, 위로는 작은 누나뿐이다. 큰 누나와 큰 형과 작은 형 모두 칠십 대 초중반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나 또한 칠십 고개를 넘었으니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다만 내가 형들 보다는 술과 담배를 짝하지 않았으니 형들보다는 몇 년 더 살겠거니 할 뿐, 이 조차 전혀 근거 없는 막연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마음을 나누던 친구 한 명은 술 좋아라 하다가 사십이 못 되어 어느 추운 날 길에 쓰러져 얼어 죽었다. 또 한 친구는 임파선 암으로 5년 여 동안 투병을 하다가 지난해 훌쩍 가 버렸다. 몸 좀 좋아지면 두물머리 산책 한 번 하자는 약속도 저버린 채 영영 간 것이다.


죽음은 저 멀리서 멈춰 있는 게 아니다. 아직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을 뿐 지금도 한 발짝씩 내게로 향해 다가오고 있음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평소 말로만 하던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 비로소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독일 시인 하이네는 죽음을 노래했다. "잠이 좋다. 더 나은 것은 죽음이다.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가장 좋았으리라." 그러나 나는 태어 나서 잘 살다가 이곳까지 무사히 왔으니 이 또한 은혜 중 은혜 아닌가. 아무튼 오늘 밤은 푹 자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