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대낮의 한 풍경

by 장석규

<한여름 낮의 그림자>

불볕 쏟아지는

팔월 첫날 오후 두 시,

삼십육 도 날 선 공기

선풍기 날개 허공 가르지만

돌아오는 열기는 목덜미를 끈적이고

등짝에서 스멀댄다


냉장고 한 편, 박아둔 막걸리 한 병

그것이 터뜨릴 기적이라면

타는 목마름조차 축복이 되리


새벽이슬 머금다 지친 지렁이,

마당 섬돌에 새까맣게 눌어붙은

생의 자국

빨간 장미, 열정에 몸 달구다

갈색 재가 되어 가는 사랑


게슴츠레 반쯤 감긴 눈 속으로

삶의 고통이 번져드는 한낮

그때, 창문 너머

고추잠자리 한 마리,

바람처럼 가볍게 떠오르네


저 작은 날갯짓이 가져올

또 다른 기적을,

나는 소리 없이 기다린다

메마른 가슴 한구석,

작은 희망 한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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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한낮의 사색: 기적을 기다리며>


어김없이 찾아온 8월 1일 오후, 섭씨 36도~38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온 세상을 집어삼켰다. 전기요금 무섭다는 아내 핀잔에 에어컨 대신 윙윙거리는 선풍기에 애써 기댄 채, 나는 늘어진 대낮의 풍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바람은 더위를 흩뜨리려는 듯했지만, 흩어지던 더위는 이내 되돌아와 끈적이는 땀방울로 목덜미에 들러붙고 연신 등짝에서 스멀댔다. 이런 날은 그저 우물 깊이 박아두었던 막걸리 한 잔이 절실하다. 그것만 있다면, 이 고통스러운 더위마저 잠시 잊게 할 작은 기적이 될 터였다.


창밖의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침 이슬에 이끌려 산책 나왔다가 제때 돌아가지 못해 말라비틀어진 지렁이 사체들이 볕 좋은 잔디밭에 깔린 섬돌 위에 들러붙어 있었다.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갈색으로 타들어가는 빨간 장미꽃 한 송이도 보였다. 게슴츠레 반쯤 감긴 눈에 밟히는 이 광경들은 그야말로 한여름 낮의 고통 그 자체였다. 삶이란 때로는 이토록 무자비하게, 우리의 온 감각을 곤두세우며 힘겹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시선이 머문 곳은 창밖을 유유히 날아가는 고추잠자리 한 마리였다. 쨍한 햇살 아래, 그 가볍고 자유로운 비행은 마치 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이끄는 듯했다. 저 작은 날갯짓이 가져올 ‘또 다른 기적’은 과연 무엇일까. 막걸리 한 잔이 주는 즉각적인 시원함 너머에,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가 가져다줄 새로운 희망 같은 것이 아닐까. 삶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늘 이처럼 작은 기적을 기다리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 기적은 비단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한 마리 고추잠자리의 비행처럼 우리 안에 고요히 스며드는 작은 평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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