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을 맞이하여 생각해 보는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첫 장에서부터 느껴진 책의 힘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내 몸이 앉아 있던 책상과 의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오르한 파묵, 『새로운 인생』,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6, 9쪽
튀르키예의 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1952~)의 소설 『새로운 인생』에 나오는 첫 문장입니다. 『새로운 인생』은 튀르키예 가 1980년대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상처를 가감 없이 그리면서 전통적인 가치들을 서구의 음모로부터 지켜내려는 방황과 갈등을 내밀하게 묘사하는 작품입니다. 오르한 파묵은 이 소설의 작품성과 대중성, 세계성을 인정받아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스탄불의 평범한 공대생 오스만은 우연히 아름다운 여학생 자난과, 그녀가 읽던 책을 마주합니다. 그 책을 펼쳐 든 순간부터 강렬한 충격을 받은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합니다. 오스만은 자난과 함께 기나긴 버스 여행을 시작하고, 책 한 권이 이끈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평소 읽는 책 가운데 우리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 만한 책을 만난다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주는 책이 있다면, 누구라도 당장 그 책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겠지요? 아니 꼭 그렇지 만도 않을 겁니다. 왜냐고요? 현재의 자기 존재에, 아니면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는 분들은 변화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변화는 불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것이지요.
책을 왜 읽는가, 하는 문제에 답을 하기는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책을 찾아 읽는 이유나 목적이 서로 다를 것입니다. 그러니 다양한 대답이 나오는 건 당연하겠지요. 단지 재미를 추구하려고 책을 읽는 분도 있을 테고,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읽는 분도 있을 겁니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깊이 사유하고 싶어서'처럼 차원 높은 답을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모든 독서의 이유와 목적은 결국 ‘변화’라는 지점에 수렴되지 않을까요? 지금 상태보다 더 멋진 장래를 맞이하기 위해서 어떻게 변화할까, 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얻으려면 역시 독서가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요즘 서울 같은 대도시의 대형 서점에 가면 개방 또는 공유 공간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어 얼마나 좋은 지 모릅니다. 중소 도시에서도 도서관이 없는 곳이 없고, 면 단위 시골 동네에도 작은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여건입니다. 제가 사는 시골만 해도 작은 도서관이 있고, 10여 분만 더 나가면 꽤 큰 도서관이 있어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천국이 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나의 삶에 변화를 이끌어 줄 만한 책을 고른다면 어떤 책이 좋을까요? 당연히 책을 찾는 목적과 이유, 취미와 관심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서재나 도서관을 벗어나 어디를 가도 책은 꽂혀 있더라,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속에, 낯선 곳을 여행하는 가운데도, 산과 숲과 들판에도, 산책하는 길에도, 그리고 도시 대로변이나 골목길 어디에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 아닌 책들이 발길 닿는 곳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라, 하는 것입니다. 선현들의 말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볼까요? 조선 시대 실학자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답경지答京之>에 나오는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외쳐 말하기를, '이것은 새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이로구나’ 했다. 이를 문장으로 본다면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연암 선생은 뜨락에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책을 읽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새의 움직임과 소리마저 연암에게는 살아있는 글자이자 문장으로 느껴졌다는 의미겠지요. 연암의 제자 홍길주(洪吉周,1786~1841) 선생이 한 말도 흥미롭습니다.
문장은 다만 독서에 있지 않고, 독서는 다만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산천운물 山川雲物과 조수초목 鳥水草木의 볼거리와 일상의 자질구레한 사무가 모두 독서다.
박지원, 홍길주 선생의 한층 여유롭고 멋이 오롯이 느껴지는 가운데, 우리 조상들은 독서를 꼭 책에 국한해서 인식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가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옛 선현들의 지혜를 본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자연물과 일상에서 만나고 이루어지는 일들을 두루 살피고 경험하면 그것이 곧 독서라는 겁니다. 다만 어느 것을 눈여겨보고 나의 것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제 경우 주변에서 걷기 좋은 길들, 여러 유명한 산 등지에서 만나는 숲 속의 나무와 풀, 동물과 곤충 등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들이 주는 신선한 자극에 죽기도 하고 살기도 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다시금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우주 만물이란 텍스트를 한 권의 책으로 읽어내는 살아있는 독서가 사는 맛을 더해줬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그는 분명 남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일 겁니다. 책 한 권을 읽고, 아니 하나의 문장 속에서도 그동안 살아온 인생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우리 주변에 널린 자연 속의 텍스트들을 읽어낼 줄 아는 지혜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듯싶기도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이 꽤나 산뜻하게 해 줍니다. 책 읽기 좋은 계절임을 실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계세요? 눈만 마주쳐도 사랑에 푹 빠져들게 만들어주는 책? 아니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터득할 수 있는 책? 어느 것이라도 다 좋겠지요. 다만, 책 한 권이 당장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줄 거라는 조급한 기대보다는, 그저 읽고 또 읽으며 스스로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독서가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인생'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나 자연스러운 변화가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