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기술을 배우기 전에, 먼저 오래된 나를 돌아봤다
“지금 이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뒤처집니다.”
“5년 안에 판이 바뀝니다.”
잠시 멈춰 화면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새로운 걸 계속 배우는 것만이 답일까.
30년간 시장 데이터를 분석해온 마케팅 분석가가 있다.
수천 건의 리포트를 만들었고, 수많은 캠페인의 성과를 검증했다.
숫자의 패턴을 보면 어느 정도 결과가 예측된다.
보고서를 보면 무엇이 빠졌는지 금방 보인다.
그런데 산업이 바뀌거나 기술이 급변하는 순간,
그 사람은 갑자기 “새로운 툴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계산은 단순하다.
도구를 바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더 효율적으로 보인다.
경험은 추상적이고, 도구 숙련도는 측정 가능하다.
여기서 많은 50대가 흔들린다.
내가 쌓아온 30년이 정말 무력해지는 걸까.
‘흥미’라는 단어는 가볍다.
그러나 30년간 시장 데이터를 다뤄온 경험은 취미가 아니다. 축적이다.
어떤 수치가 왜곡되었는지 빠르게 감지하는 감각
보고서의 논리적 허점을 즉시 찾아내는 기준
단기 유행과 구조적 변화를 구분하는 시각
이것은 단기간에 학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이 축적을 자산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면, 그 앞에서 스스로를 ‘구식’이라고 규정해버린다.
그러나 도구는 인프라가 된다.
남는 것은 해석 능력이다.
AI는 단순 업무를 빠르게 대체한다.
데이터 정리, 1차 분석, 요약 리포트 작성 같은 영역은 자동화 속도가 빠르다.
이 변화는 조직 구조에도 영향을 준다.
신입이 수행하던 반복 업무가 줄어든다.
학습을 위한 중간 단계 업무가 사라진다.
조직은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결국 기업은 “경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문제는 경험이 있어도 그것을 구조화하지 못하면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이 아니라, 자산을 점검해야 한다.
지난 30년간 반복적으로 수행해온 분석 유형을 정리해본다.
그중 실제 성과를 만든 프로젝트를 추린다.
그 프로젝트에서 내가 판단했던 기준을 언어로 정리한다.
여기까지가 “축적의 구조화”다.
AI를 새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잘하는 영역에 AI를 붙이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마케팅 분석가라면:
원자료 정리 → AI로 자동 전처리
경쟁사 리포트 비교 → AI로 1차 패턴 추출
설문 데이터 요약 → AI로 초기 인사이트 도출
과거 캠페인 데이터 회고 → AI로 유사 사례 검색
이렇게 하면 속도는 빨라진다.
그러나 최종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는 계산을 빠르게 하지만,
시장 맥락과 변수의 의미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새로운 툴을 빠르게 습득한다.
누군가는 젊고 빠르다.
그러나 시장은 단순히 빠른 사람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장에는 판단 기준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30년간 데이터를 본 사람은
숫자 뒤의 맥락을 읽는다.
그것은 신기술 강의에서 배우기 어렵다.
새로운 도구를 배우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순서는 다를 수 있다.
내가 이미 잘하는 것을 구조화한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게 만든다.
그 위에 AI를 붙인다.
도태될까 두려워지기 전에,
먼저 내가 쌓아온 것을 점검하는 편이 낫다.
새 기술은 그 다음이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