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다시 글을 쓰는 쪽을 택했다.

첫 글이라면 글쓰기에 대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1)

by 장수댁 고양이


첫 글이라면 글쓰기에 관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의식주를 제외하고 꾸준히 하고 있는 거라면 와이프를 사랑하는 것 다음이 글쓰기다.


언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나 떠올리자니 초등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사교성이 좋지 못했고, 공부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국어 시간에 적당히 휘갈긴 시를 모두가 좋아해 줬다. 한참 보던 동물 사전에서 ‘금계’ ‘은계’라 꿩에 영감받아 쓴 시였는데, 무슨 신문사에서 특별상을 받았다고 했다.


엄마는 영재라며 좋아하셨지만, 처음에 난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같이 영어학원에 다니던 여자애가 이거 너냐고 기사를 스크랩해 왔더라. 그때가 아마 처음으로 인정욕구가 충족됐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고 갑자기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적당히 휘갈겼으니까. 다만 글을 쓰면 즐거운 일이 생긴다는 자각이 생겼다. 이후로도 글쓰기는 좋아했다. 장문의 보고서나 감상문을 쓰는 숙제가 있다면 즐겁게 했다. 가끔 위트를 섞어 사람들이 웃어주면 좋았다.


그렇게 가끔 숙제가 나올 때만 글을 썼던 게 전부다. 그리고 스무 살 부사관으로 입대하면서 글을 거의 쓰지 않게 됐다. 이유는 단순했다. 쓸 일이 없으니까. 군은 창의적인 사고보다는 규율과 일관성이 중요한 곳이다. 난 그걸 몰랐고, 날개를 펼치려 했다. 눈치가 없었다는 표현이 적당하리라.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덕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도피처로 삼기에 글쓰기만큼 좋은 것도 없더라.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자유로웠다. 기록을 남길 생각은 하지 않았고, 글 자체도 많이 쓰진 않았지만 분명히 그때 난 글을 쓰고 있었다.


제대를 목표로 하면서 글쓰기 빈도를 늘린 것 같다. 고참들의 단골 멘트인 “밖에 나가서 뭐 먹고 살래”가 정해지지 않은 도피성 선택이라 더더욱 그랬다. 당시부터 요가가 취미였는데, 요가 강사나 해야겠다고 막연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코로나19가 터졌다.


집에서 유튜브를 해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컴퓨터부터 샀지만 결국 게임기로 전락했고, 1~2시간이면 끝나는 다이소에 상하차 알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이라면 역대급 국가 위기 상황에 기자 수요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후 5년여간 중소 언론사에서 기사를 썼다. 글쓰기를 좋아하니 기자도 잘 맞겠거니 했지만, 수습 시절에는 매일 3번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 다행이라면 혹독한 사수를 만나 멘탈이 단련됐고, 6개월쯤 지났을 때는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게 됐다. 덕분에 때려치우지 않고 신문사를 다닐 수 있었다. 물론 기사도 거의 매일 썼다.


특히 인터뷰가 재밌었다. 남들 다 쓰는 이슈는 무미건조했지만, 상대방의 말에서 핵심을 골라내 정리하는 인터뷰는 특별했다. 가끔 냉소적인 사람을 만나면 ‘대체 왜 인터뷰하자 그랬을까’ 싶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긴장하면서 조심스러웠다. 그런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며 이야기하는 게 좋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얘기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기사는 다음날이면 휴지 조각이 되는 일을 쓰는 일이다. 인터뷰를 매일 쓸 순 없으니까. 결국 반복되는 패턴에 신물이 나버렸고,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까지 겹쳐 기자 생활을 청산하게 됐다. 여전히 글쓰기는 좋아했지만, 업으로 삼기에는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게 됐다. 그동안 글은 많이 썼지만 난 여전히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말 못 하냐 물으면 또 그렇진 않다. 그래서 이렇게 써본다. 삶이든 글이든 정리를 할 때가 있으니까.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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