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지근한 요가사랑(2)
요가를 처음 만난 때는 24살 겨울이었다. 러닝을 하다 오프시즌이 되면서 헬스장으로 갔고, 트레드밀에도 질리면서다.
헬스장에는 GX룸이 2개 있었는데 탈의실을 나오면서 GX룸 통창 너머의 사람들이 뭐하는지 힐끗힐끗 하는 게 또 재미있었다. 저녁시간대엔 어김없이 요가수업이 이어졌고 호기심이 생겼다. 다행히도 아저씨들 몇이 뒤에서 운동하고 계셨기에 용기를 내어 요가GX 수업을 신청해 나갔다.
지금은 눈도 깜짝 않지만 처음 요가원에 가는 남자들은 쭈뼛거릴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고, 뒤에 구석에 매트를 깔고 앉았다. GX룸은 생각보다 어두워 집중하기에 좋았고, 나는 생각보다 유연했다.
그리고 대망의 첫수업. 따라하기에 바빠 뭘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집에서 샤워를 할 때 거울에 비친 창백한 몸은 충격적이었고, 혈액순환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다고 요가수업을 계속 나갔다는 말은 아니다. 그 달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요가를 그만뒀으니까. 다만 책을 주문했다. 바로 권수련 선생님의 <요가아사나 지도법>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따라하기 보다는 원리를 알고 싶었다. 공부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기에 해부학부터 시작해 주요 아사나(동작)의 원리와 티칭포인트를 공부했고, 호흡과 반다(요가식 숨참기)의 관계에 대해 탐구했다. 집에서 하는 요가 수련은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복장도 자유로워서 좋았다.
책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이해했을 무렵에는 요가 동아리도 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요가를 할 것 같은 체형은 아니었는데, 모임에 온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즐거웠던 것과는 별개로 모임은 1년여 만에 마치게 됐다.
잠시나마 요가 강사에 대한 꿈을 꿨다. 설명하는 게 좋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요가는 장점이 많은 운동이었고, 부상 위험도 적었다. 집에서도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이만한 운동이 있을까.
하지만 난 어렸고 요가를 좋아했지만 인생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자격증 취득 과정 중 학원 운영 측과의 갈등에 마음이 상해버렸고 환불도 없이 도망치듯 포기해버렸다. 학원 측은 취업 시켜준다며 직원처럼 부리려했지만 난 그럴 마음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돈이 아쉽지만 그 때의 나도 참 경우가 없었다.
요기(yogi, 요가하는 사람)로서의 삶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물론 달리기를 할 때나, 클라이밍을 할 때는 안 하기도 했지만 수련해둔 게 어디로 가진 않더라. 결혼 후에도 내 요가사랑은 미적지근하게 계속됐다.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태생이 통뼈에 뻣뻣한 와이프는 말했다. 자다가도 일어나 등이 결리다며 스트레칭을 하는 그녀지만, 요가를 같이 하자는 요청에는 늘 시큰둥했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아직 목에 칼이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나도 고집이 있기에 10분이든 20분이든 몇 주에 한 번씩이든 간헐적으로 요가를 강요했다. 그리고 마흔에 접어들면서 와이프 목에 칼이 들어왔다. 당시는 클라이밍에 빠져있어 요가를 하지 않았는데 와이프가 스스로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게 결혼 5년차 때다. 참 오래도 걸렸다.
덕분에 지금은 같이 요기가 돼 가고 있다. 아니 어떨 때는 와이프의 요가력이 더 강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지금도 매일 저녁이면 에일린 선생님의 영상을 보며 요가를 한다. 와이프는 여전히 뻣뻣하고 난 체력이 없지만 그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다.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