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15)
가끔 넷플릭스를 본다. <흑백요리사> 같은 게 나올 때면 형이 빌려준 아이디로. 언제 빌렸는지도 모른다. 재인증이 필요하다는 문구에 메시지를 보낸다. ‘형아, 넷플릭스 좀 풀어줘.’ 원래 답장도 잘 안 하는 사람이지만 뒤늦게 ‘다시 인증해서 보내’라는 문자가 온다.
우리가 문자를 주고받는 건 그때뿐이다. 필요한 일이 생길 때 일 년에 두어 번. 생일선물을 받아낼 때와 넷플릭스 막혔을 때. 다른 형제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은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
사는 세계가 다르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같이 있을 때 흐르는 그 냉랭한 공기가 싫다. 기자 생활을 하며 낯선 사람을 수없이 만났지만 형과 있는 시간은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형은 축구를 하면 늘 주장을 맡았고 공부도 전교권에서 놀아 선생님들도 예뻐했다. 주변에는 늘 친구들이 있는 ‘핵인싸’. 요즘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축구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나와는 다른 인종.
내가 형보다 뛰어난 건 그다지 없었다. 공부엔 흥미가 없었고, 걷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게 엄마의 바람이었으려나. 게다가 연년생이었기에 형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들은 나와 형을 비교하기 바빴다. “형은 안 그러던데 넌 왜 그러니.” 그 말이 듣기 싫었다.
형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을까. 생각해 보면 형이 내게 잘못할 한 일은 없었다. 덩치는 내가 더 컸기에 맞고 자라지도 않았고, 엄마 아빠가 형을 더 예뻐한 것도 아니다. 형이 용돈을 더 받았을 순 있지만 그게 부럽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형을 멀리하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스무 살에 직업군인이 되면서는 말도 거의 섞지 않게 됐다. 대학생활이 힘들다는 형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형이 취업을 고민할 때 나는 안정적으로 벌었고 흥청망청 썼다. 형은 스물 일곱 때 전공을 바꿨고,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군생활을 하며 꼰대가 됐고, 취준생인 형은 갈구기 좋은 상대였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결코 좋은 느낌은 아니리라. 돈 버는 동생이 백수 형에게 할만한 좋은 말이 뭐가 있으랴. 당시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공의 비법’ 따위에 심취해 있었다.
다행이라면 형이 전공을 바꾸면서 잘 풀렸다는 점이다. 원하던 대기업에 들어갔고, 얼마 전에는 5년 사귄 형수와 결혼했다. 친구들을 워낙 좋아해 걱정되긴 하지만 형수도 모르고 결혼하진 않았으리라.
가끔은 아쉬울 때가 있다. 처형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늘 와이프에게 연락하는 걸 볼 때면 특히 그렇다. 서로 의지하는 가족. 이상적이다. 나와 형 사이와는 거리가 멀다.
미안했다고 하면 사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으려나.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