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루틴(36)
나는 아빠와 많이 닮았다.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점이 그렇다. 최근에도 저점을 지나고 있었다. 이불 속에서 세상을 저주한다. 미친 건 내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바뀌는 건 없지만 마음이 편하다. 집사가 나간 집에서 홀로 자유의 무게를 느끼며 인스타 피드를 넘기길 1시간째. 아무도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죄책감이 충분해지면 그제서야 시작한다. 정리를.
창문을 열고 환기한다. 눅눅하고 메케한 공기가 나가고 직사광선에 소독된 산뜻한 서울 공기가 들어온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세상을 감상한다. 어제와 다르지 않고, 저번 달에도, 작년에도 비슷했을 풍경을 바라본다. 그냥.
청소기를 돌린다. 선이 없어 자유롭지만 10분 이상은 그럴 수 없는 청소기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청소기에 선을 꽂으면 충전이라도 되지만 나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눈앞에 일을 할 수밖에.
안방과 거실 겸 주방, 큰방까지 13평 남짓한 공간을 구석구석 돌린다. 숱이 많은 집사는 머리털이 많이 빠진다. 청소기를 다 돌리면 동그랗게 말려있는 머리털이 톡 하고 빠진다. 꽤나 유쾌하다.
사흘에 한 번은 화분에 물도 준다. 메마른 화분을 화장실로 옮기고 샤워기로 물을 흩뿌린다. 화분 바닥으로 물이 새어 나올 때까지. 식물을 10개쯤 죽이니 얘네들이 어떻게 하면 안 죽는지 알게 됐다. 아직은 그러하다.
빨래는 매일 한다. 가진 옷이 많이 없기도 하고 몰아서 하면 삶이 배로 퍽퍽해진다. 세제는 빈 샴푸 통에 소분해 뒀는데 3번 펌핑하면 과하지 않다. 정리를 시작할 즘 돌려두면 곧 다 됐다는 알림음이 나온다. 슈베르트의 ‘숭어’. 초등학교에서 배운 이후 잊고 있었지만 매일 듣기에 이젠 친숙하다. ‘거울 같은 강물에 숭어가 뛰노네’ 같은 가사가 메아리친다.
요즘엔 향도 피운다. 돈을 주고 향을 사서 태우고 있으면, 돈을 태우는 기분이다. 돈이 잡히지도 않는 연기가 되어 방충망 밖으로 날아간다. 연기는 사라지고 잔향이 남지만 그마저도 이내 사라진다. 향이 다 타들어 가 그을음만 남게 되면 쓰레기통에 버린다.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구름이 드문드문 낀 환한 날이다. 창문은 그냥 열어둔다. 개봉한 지 한 달 돼 적당히 눅눅해진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린다. 과일과 간장 어딘가의 시큼하고 쿰쿰한 향이 코를 찌른다. 유리잔에 커피를 담아 책상에 앉는다. 그리곤 커서가 깜빡거리는 빈 화면을 바라본다. 이걸 무언가로 채워야 하지만 아직 별다른 생각이 들진 않는다.
아빠라면 뭘 했을까 고민해 본다. 더 나은 인간이 되리라 다짐했지만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한 자 한 자 옮겨 본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