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루틴(37)
얼마 전 김건희가 집에 찾아왔다. 동명이인을 부담스러워하는 건희는 옷을 좋아하는 20대 청년이다. 자기 사이즈를 잘 아는 건희는 질 좋은 슈트를 입고 다니거나 점프슈트에 청재킷을 멋스럽게 입고 다닌다. 건희는 거실에 있는 무언가를 잠시 바라봤다. “형, 옷 이게 다예요?”
가로 90cm 세로 60cm인 스텐 철봉 옷장. 그게 전부다. 노트북이 들어가는 검은 백팩 두 개가 옷장 옆에 걸려 있고, 그 아래로는 양복 2세트, 바지 4벌, 셔츠 3벌, 반팔 3벌, 나시 3벌, 간절기용 재킷 2벌, 니트 2장이 있다. 나머지 공간에는 프린터나 책 등을 뒀다.
한때 유행했던 ‘캡슐 옷장’이라는 문화다. 매일 같은 옷만 입는 방식이 끌렸다. 문제 될 것도 없더라. 군 생활할 때는 군복만 입어 옷이 필요 없었고, 민간인이 돼서도 깔끔하게만 입으면 그만이었다. 세상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복장은 적당히만 하면 된다는 걸.
공식 행사는 셔츠와 슬랙스, 그 외는 반팔티에 면바지. 날씨가 차면 외투를 입는다. 매일 같은 옷을 계속 입고 자주자주 빨아준다. 오늘 묻은 먼지를 내일까지 방치하지 않는다. 그러다 늘어나거나 색이 바래거나 국물이 튀거나 구멍이 나거나 하는 등 변수가 생기면 같은 걸로 바꿔준다. 나를 바꿀 순 없지만 옷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게 좋았다. 그리고 그 생활도 이제 10년이 다 돼 간다.
매일 아침 뭘 입을까 고민했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옷 잘 차려입기’라 믿었고, 빨갛고 노란 색상의 양말이나 어디에 쓸지 생각해 본 적 없는 니트 넥타이 등을 모았다. 그게 다 어디 갔을까.
엄마는 내 옷을 보고 “이거 소재 되게 좋다. 버릴 거면 나 줘”라고 말하곤 했다. 엄마는 실속을 잘 챙기는 편이다. 본가에 가면 가끔 내 티셔츠를 입고 있는 엄마를 보게 된다. 목은 늘어났지만 원단은 짱짱한 주황색 티셔츠다. 내가 버리라고 하면 엄마는 말한다. 소재도 좋고 커서 좋다고.
건희는 여전히 내 옷장을 구경하고 있다. 가지 수가 적어 몇 초면 봤을 옷장은 그렇게 한동안 지켜본다. 의자에 앉아 한 벌 한 벌.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눈으로.
마침 배달이 왔다.
아직도 보고 있는 건희에게 말했다.
“훔쳐가지 마라 다 기억하고 있다.”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