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근모임 글쓰기 주제는 ‘이상형’입니다. 연애가 어려웠고, 여자를 사귀어 본 적 없이 학창 시절을 마쳤습니다. 20살 넘고부터는 이상형을 따질 게 아니라 나를 좋아하면 사귀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상형은 저에게 그런 개념입니다. ‘말도 안 되는 그런 얘기’ 말입니다.
이상형이 왜 말도 안 된다고 여겼는지 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
초등학교 때는 아주 미숙했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애는 있었지만, 다가가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가끔 먹을 걸 줬지만 보통은 때리거나 괴롭혔습니다. 당연히 여자애들은 ‘극혐’ 합니다. 초등학교 때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6년이 흘러 중학생입니다. 남녀 공학을 갔다면 무언가 배웠을 겁니다. 하지만 제 모교는 남자만 득실거리는 ‘남중’이었습니다.
남중은 무서운 곳입니다. 화장실이 있지만 사용할 수 없습니다. 큰일이라도 보려면 각오해야 합니다. 머리 위에서 물벼락이 날아올지 모르니까요. 사람이 들어간 걸 확인한 후 변소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빌런도 흔합니다. 안에 누가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3년 동안 학교에서 큰일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다행히 중학교 때 전 과목 학원에서 여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신성한 학원에서 연애라니 가당치도 않았습니다. 여자들도 공부하러 온 거지 연애하러 온 건 아니었겠죠. 그 생각이 엄청난 착각이란 걸 안건 나중입니다.
고등학교는 경남 산골에 있는 기술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여자는 전체의 10%입니다. 전 초등학교 이후 변한 게 없습니다. 여자들이 여전히 저를 싫어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녀들은 애초에 좋고 싫은 마음이 아니었을 겁니다. 관심이 없었겠죠. 하지만 전 그렇게 믿었습니다.
-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적어도 전 아닙니다.
하지만 전 그녀들의 따뜻함을 필요로 했습니다. 레벨업에만 미친 겜돌이들로는 채울 수 없는 이성의 보살핌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여자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믿으면서요.
사람은 원래 앞뒤가 다르지만 저는 유독 사랑에 관해 ‘모순덩어리’였습니다. 왜 연애를 못 할까를 늘 고민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얼굴만 붉히다가 고백으로 혼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대략 5명을 혼내줬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미안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5명을 혼내주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아닙니까? 실패한 후에는 철저하게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살을 빼거나, 화술을 익히거나, 여자의 심리를 공부했습니다. 유튜브의 <버블디아의 연애특강>도 제 ‘최애’였습니다. 그게 도움이 됐냐 물으면 애매합니다. 5번이나 삽질을 했으니까요.
본질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는 걸 말이죠. 누가 가르쳐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말 쉬웠으니까요.
마음을 주고받는 데 서툴렀습니다. 좋아하면 호감을 표시하고, 싫다고 하면 거리를 두는 간단한 걸 못 했습니다. 전 늘 답을 정해놨습니다.
내 사랑은 이뤄져야 하고, 넌 ‘Yes’라고 말하면 된다.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마음은 좋을 수도, 싫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아무도 제게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어 물어볼 생각을 못 했고, 물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었습니다. 물어봤다면 의외로 간단했을 겁니다.
집사는 그런 과정을 끝내고 28살에 만난 사람입니다.
오늘의 글쓰기 주제는 ‘이상형’이었습니다. 집사가 제 이상형입니다. 집사는 아이유도 아니고 노래 부르는 것도 싫어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집사는 ‘Yes’라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