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역할’이란 주제로 쓴 글에 댓글을 20개 쓰고 싶다는 분이나, 정말을 100번 쓰고 싶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더 언급해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요즘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서술해 공감을 끌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늘은 어떤 생각을 했기에 그런 글이 나왔는지를 중심으로 쓰겠습니다. 제 생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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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부갈등이 생기는 원인’을 떠올려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있습니다. 둘이 가까이 있고 서로 맞지 않으면 갈등이 생깁니다. 떨어져 있다면 싸울 일이 없고, 서로 잘 맞는다면 갈등이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고부갈등은 나쁜 걸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면 괜찮습니다. 앞으로 계속 볼 건데 결혼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법적인 가족이 됐으니까요. 영어로도 시어머니는 ‘Mother in low(법적인 어머니)’입니다. 우리가 쓰는 시어머니라는 개념은 없겠지만 법적으로는 엄마라는 거죠.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며느리는 남편과 결혼한 거지 시어머니와 결혼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해야 하지만 갈등까지 빚으면서 맞출 상대는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시어머니가 아파트를 해줬다면 얘기는 다릅니다. 그 얘기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며느리에게 있어 시어머니는 잘 지내면 좋은 상대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입니다. 결혼을 통해서만 관계가 생긴다는 거죠. 결혼하지 않았다면 시어머니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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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은 ‘결혼 문턱을 넘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일’이라는 걸 이해하셔야 합니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고부갈등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즉 남편과 법적 부부가 된 결과 중 하나가 바로 고부갈등인 거죠.
남편이 개입하는 시점입니다. 남편의 역할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남편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문제가 없다면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통 문제가 생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다른 사람입니다. 다른 시대, 다른 문화, 다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사고방식도 당연히 다릅니다.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최고지만, 그건 욕심입니다. 친엄마와도 싸우는 데 시어머니와 안 싸운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정리하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법적 가족이 됐고, 남편이 놀고 있으면 발생하는 게 고부갈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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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을 이해했으니 이제 해결 방안을 알아보시죠.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떼어 놓는 방법과 남편이 중재하는 방법입니다.
어느 게 더 편할까요? 물론 전자가 훨씬 편합니다. 그래서 보통 많이 선택하죠. 시댁에 잘 안 가면 그만입니다. 그 과정에서 시댁 식구들은 며느리를 싫어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전자를 선택한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혹 시어머니가 본인 며느리 때를 회상하며 오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선 빼겠습니다.)
즉 당장 갈등을 회피함으로 훗날 더 큰 갈등을 마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니길 기도합니다.) 근본 해결책으로는 무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갈등은 기본적으로 회피하면 할수록 당사자가 삐뚤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더 큰 문제로 돌아옵니다. 직장인이 월요병에 걸리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주말 내내 정신승리를 했으니 월요일 아침에는 이를 마주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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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떼어 놓더라도 결국은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남편이 할 역할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다만 왜 그런지 이해하면 대처하기 편하실 겁니다.
남편이 고부갈등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인생의 숙제 중 하나입니다.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고부갈등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갈등은 인지했지만 나설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전자, 즉 눈치가 없는 경우는 해결하기 쉽습니다. 눈치를 주면 됩니다. 다음에 시어머니와 마찰이 생길 때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달라고 말하면 됩니다. 혹은 어머니를 데리고 가던지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됩니다. 제대로 설명했다면 남편이 이행할 겁니다. 남편은 악의가 없습니다.
문제는 눈치가 없는 경우 정말 순수하게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입니다.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나설 타이밍이 아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큽니다. (남편이 나서서 며느리 편을 들 수도 있습니다. 이때 며느리가 시어머니 편을 들면 ‘생각보다 착한 며느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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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남편, 생각만 해도 갑갑하지 않습니까? 며느리가 다혈질이라면 피가 거꾸로 솟을 상황입니다. 가끔 옛날을 생각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화를 점잖게 내는 편이었습니다.
아무튼 화를 낸다고 남편이 듣진 않을 겁니다. 정중하게 얘기하거나 구체적으로 말해도 비슷합니다. 남편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하는 한 남편은 ‘남 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편이 이성적이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인 결론에 따라 ‘그냥 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인간’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고부갈등이라고 했으니 일단 남편이 내 편은 아닐 겁니다. 혹은 도움이 안 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남편이 네 편도 내 편도 아니거나 시어머니 편일 가능성이 큽니다. 진정한 의미의 ‘남 편’이 되는 상황입니다. 남편은 왜 ‘남 편’이 됐을까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부갈등은 평생의 숙제로 남거나, 이혼 사유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