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라도 '히콕 벨트'는 갖고 싶은걸?

by 장수댁 고양이

주말의 어느 한적한 카페 미니멀리스트인 차영이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옆자리에서 책을 보던 심희가 여자친구를 바라본다. '이번엔 또 뭘 사려고 저러나.'


'견물생심(見物生心)' 물건을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사자성어다. 차영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심희는 차영의 물건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차영이 날마다 쇼핑하고 싶은 욕구를 참고 있다는 것도 안다.


옆에서 보면 무언가 짠한 마음이 든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 인터넷을 찾아 헤매는 걸까.'


창밖으로 보이는 햇살이 따사롭다. 어제 비가 내리고 갠 덕분에 공기도 맑다. 심희는 데이트 장소로 카페를 고른 게 '아차' 싶다. 이럴 때는 공원을 가는 게 더 나았을지도.




차영은 '히콕 벨트'를 보고 있다. 저번에 산 게리슨 벨트(링크)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에 좀 더 얇은 벨트도 사고 싶어진 것.


하지만 이제 옷장에 걸린 벨트가 3개다. 하나는 원래 있던 것, 하나는 잘못 산 것. 하나는 이번에 산 것. 허리가 하나밖에 없으니 구태여 하나 더 들일 필요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갖고 싶은 마음이다. 벌이가 넉넉하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지만 갖고 싶다.


차영은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통 충동구매로 이어진다.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두다가 구매하기도 부지기수.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한 것도 어떻게 보면 '그러한 마음을 이기기 위함'이었다.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한 이후 한가지는 분명히 변했다. 물건 가짓수가 줄었으니까. 넓은 공간을 갖게 된 건 덤이다.


하지만 차영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하다. 바로 '그러한 마음'이다.




차영이 자신을 관찰하던 심희를 발견했다.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지?'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어차피 심희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부끄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못 본척해줬으면 한다.


차영은 쭈뼜거린다. "어, 보고 있었네? 헤헤.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심희는 쭈뼛거리는 차영이 귀엽기만 하다. "또 갖고 싶은 게 생겼구나. 우리 차영이 어떡하니 '견물생심'이네."


차영은 머리를 긁적인다. "저번에 산 벨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모델도 눈에 밟히더라고. 이건 '히콕 벨트'라고 세미 캐주얼에도 찰떡일 것 같아. 가죽 질도 엄청 좋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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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희가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댄다. 투명한 빨대를 따라 차갑고 붉은 오미자차가 올라간다.


심희는 차영이 보여주는 화면을 본 후 나직이 말한다. "그러네 윤기가 자르르한 게 예쁘네. 자기가 차면 참 예쁠 것 같아."


차영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렇지? 처음엔 좀 아저씨 같았는데, 보면 볼수록 묘한 마성의 매력이 느껴지는 것 같아."


차영의 입꼬리가 다시 내려간다. "하지만 사겠다는 건 아니야. 이미 이번 달은 돈을 많이 썼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거든."


"음.... 뭐랄까. 사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데. 갖고 싶은 그런 거랄까? 머릿속에선 이미 사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자꾸만 보게 되네. 헤헷"


심희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 다행이라면 차영이가 자기 물건은 자기 돈으로 산다는 점이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심희는 이미 거덜 났으리라.


심희는 차영이 기특하다. 그의 손이 차영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우리 차영이, 고민 많이 했구나. 그래그래. 벨트가 참 예쁜데, 지금은 필요가 없네. 다음에 벨트가 다 떨어지면 생각해 보자."


심희는 이미 알고 있다. 차영은 질 좋은 물건만 사기 때문에 벨트가 떨어질 일 따위는 없다는 걸.




차영은 미련을 못 버렸는지 벨트 후기를 계속 뒤적거린다. 심희는 그런 차영을 뒤로하고 책을 읽고 있다.


해가 길어진 덕분인지 오후 4시에도 창밖은 여전히 쨍쨍하다. 또 바람도 선선하다.


시선을 창밖으로 옮긴 심희가 다시 차영이를 본다. "이제 노트북은 그만 보고 조금 걸을까?"


충분히 벨트를 감상한 차영은 더는 미련이 없다. "웅, 그러자. 밖에 날씨 엄청 좋네. 이따 저녁에 뭐 먹을 거야?"


심희는 기다릴 줄 아는 남자다. "글쎄? 걷다 보면 생각나지 않을까?"


그리고 차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남자다.


그렇게 느긋한 오후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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