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인 차영의 표정이 어둡다. 최근에 산 벨트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사진을 여러 모양으로 찍는가 하면 살포시 눈을 감고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남자친구인 심희가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차영이 5분째 저러고 있으니 심희는 벨트가 어떤 운명에 처할지 이미 내다봤으리라.
차영은 심희를 아랑곳 않고, 6만원짜리 벨트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세상에 차영과 벨트 둘만 남은 것처럼.
정적을 깨고 심희가 입을 연다. "이번엔 또 왜 그래? 벨트가 불편해?"
차영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음.. 그런 건 아닌데. 뭐랄까 무언가 부족한 것 같아. 그동안 멋져서 잘 차고 다니긴 했는데 내 게 아닌 것 같아"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 변덕이 너무 심한가? 그래도 처음 받았을 때는 엄청 만족스러웠거든. 가죽도 좋고, 만듦세도 좋고, 옷이랑도 잘 어울려서 이건 평생 갖고 가야겠다 싶었는데, 무언가 애매한 것 같아."
심희는 차영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지만 '차영을 위해 모른 척하기로' 한다. "그래? 우리 차영이 뭐가 애매할까? 좀 더 얘기해 줄래?"
차영이 시선을 다시 벨트로 옮긴다. "음... 뭐랄까. 사실 어제 원래 있었던 얇은 벨트를 차고 출근했거든. 그렇게 하루 지내보니까. 너무 두꺼운 벨트는 나 하고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차고 있어도 무언가 갑갑하고 허리를 너무 조이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불편하네. 자기 말이 맞는 것 같다. 어휴, 왠지 낭비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
차영이 벨트를 보며 울상을 짓는다.
심희는 이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차영이 저렇게 구매하고 후회한 게 어디 한둘이었던가. 하지만 심희는 그녀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해야 할 말도.
"차영아, 그래도 난 자기가 그렇게 새로운 물건 들이면서 자기랑 맞는지 봐서 괜찮다고 생각해. 그전에는 그렇게 두꺼운 벨트는 없었잖아?"
"써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자기가 써보고 내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차영은 심희의 진지한 눈에 차분해졌다. 이제는 벨트를 보지 않고 심희를 본다. "그런가?"
심희는 다음 말을 고른다. "음... 그니까. 자기가 물건을 이것저것 많이 시도하기는 하지만 자기는 무언가 다른 것 같아."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만 자기는 아니잖아? 꼭 마음에 드는 걸로 주변을 채우려고 하고 나는 그게 멋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을 만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써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 또 비용 때문에 그냥 포기해 버리면 계속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자기가 빚을 지면서까지 사들이는 것도 아니니까."
차영은 그렇게 말해주는 심희가 고맙다. "웅. 맞아. 그랬었지. 고마워 자기야."
차영이 다시 밝은 얼굴로 당근마켓을 뒤적이는 걸 보니 심희는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물건에 쉽게 질려하는 차영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래,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심희가 생각하길 멈추고 전기포트에 물을 올린다.
오늘은 둥굴레차다. 집에서 마시는 차로 둥굴레차는 꽤 괜찮은 편이다. 구하기도 쉽고, 구수한 맛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심희는 그 사실을 직장을 다닌 지 6년 만에 깨달았다. 둥굴레차는 사무실에 널리고 널렸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가방 구석에 있던 둥굴레차를 집에서 우렸을 때 심희는 느꼈다. '다르구나.'
둥굴레차는 고소하고 깔끔했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홍차보다 더. 그리고 무엇보다 질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끓는 물을 주전자에 붓고 3분. 심희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붙잡고 씨름하는 차영을 바라 본다. 끙끙대는 모습이 안스럽지만 심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심희는 차 주전자를 바라보며 둥굴레차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에 취하기로 한다. 주전자에서 나는 향기가 방안을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