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인 차영은 유독 '옷'에 관심이 많다. 한 때는 빨갛고 노란 형형색색의 양말을 보며 즐거워할 때도 많았지만 이제 그녀의 옷장에는 검은 양말이 전부다.
차영이 옷장 앞에서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다. 옷장에는 여름에 입을 흰색 티셔츠 3벌, 검정 치노 2벌, 로우 데님 1벌, 진회색 치노 1벌이 걸려있다.
남편인 심희가 차영을 발견했다. 이런 상황 낯설지 않다.
심희가 패션디렉터가 돼야 하나 고심하던 찰나, 차영이 심희를 부른다. "자기야, 이리 와봐."
고분고분한 심희. 차영이 옆에 선 그가 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다. "응, 왜?"
차영이 옷장 맞은편 침대에 앉는다. "내 옷장에서 부족한 게 뭘까?"
차영은 스스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고, 옷의 가짓수를 줄였다. 한 때는 심희가 가짓수를 조금 늘리는 게 어떻냐고 묻기도 했지만, 차영의 옷장은 그대로였다.
미간에 주름을 잡고 싶은 심희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다. "글쎄, 자기한테 잘 어울리는 옷이 가득한 것 같은데? 자기는 깔끔하게 입는 게 잘 어울려. 그리고 지금 옷장이 딱 그렇게 세팅돼 있어."
차영은 심희의 대답이 2% 아쉽다. "그렇지. 확실히 그렇긴 한데, 무언가 애매하단 말이지."
심희는 몇 종류 되지도 않는 옷을 두고 고심하는 차영이 이해되지 않는다. 필요하면 늘리고, 너무 늘렸다 싶으면 줄이면 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차영이 바라는 답은 그런 게 아니다.
심희가 차영에게 묻는다. "좀 더 고민해 볼까? 어떤 게 애매한 것 같아? 가짓수가 너무 적은가?"
차영이 뜸을 들이다 말한다. "글쎄... 옷 가짓수가 늘어나는 건 싫은데, 너무 무난 무난하게 입는 것 같아서."
"심플하게 입는 게 깔끔하고 질리지도 않아서 좋은데, 가끔은 마라맛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심희가 차영의 옷장을 평소보다 유심히 훑어본다. "음.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나도 가끔은 자기가 마라맛으로 입었으면 할 때도 있어."
차영이 눈을 번뜩인다. "그래? 진짜?"
심희는 아차 싶었지만 말을 이어간다. "가끔은 말이지. 근데 자기가 그런 스타일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고, 심플하게 입는 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긴 하거든."
심희가 묻는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거야?"
차영이 고심한다. "글쎄, 왜일까? 음...."
"맞다. 아까 집에 오면서 서점에 들렀거든. 전신 거울을 봤는데 무언가 심심한 느낌이라. 너무 심심하게 입었나 싶기도 하고."
"근데 자기 얘기 들어보니까. 지금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
연애 초. 차영은 심희에게 남자친구/남편의 역할에 대해 교육한 적이 있다.
자고로 남자란 여자가 불안해할 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 존재라나 뭐라나.
아무튼 지금이 그때가 아닐까 싶다.
심희가 차영이 옆에 앉아 같이 옷장을 바라본다. "전에 자기가 그런 말 했었잖아.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옷이 전부는 아니라고."
"난 자기가 그 말했을 때 대단하다고 생각했거든. 당연한 말이지만 무언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이잖아."
"또 보통 자기 또래 여자들은 옷을 좋아하는데, 자기는 나름 철학이 있는 것 같고. 난 그런 모습이 참 좋았어."
차영이 머리를 긁적인다. "그래? ㅎㅎㅎ 그렇구먼."
차영이 옷장을 뒤로하고 거실로 나간다. 베란다 창을 여니 선선한 밤공기가 불어온다.
차영이 심희를 본다.
심희가 묻는다. "산책 나갈까?"
차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심심한 옷장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