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변의 법칙 (모건 하우절, 2023)
"자기야,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있어? 모두가 진리를 깨달은 세상 같은 거."
2번의 이직과 3번의 퇴사, 5번의 손절을 겪은 차영(30)이 남편 심희(32)에게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 라떼를 마시던 심희가 짧게 답한다. 그런 세상이 있을 리 만무했고, 있다고 해도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에.
차영이 카페 창 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본다. 카페는 홍대입구역 앞 건물 3층에 위치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잘 보인다. "저 사람들이 모두 진리를 깨달았다면 저렇게 바쁘게 살까 하는 거지."
심희도 사람들을 본다. "하긴 나도 저런 모습이겠지. 아마 한가해도 부지런히 이동할 거야. 원래는 느긋한 성격이었던 것 같은데 저 안에 있으면 그렇게 되더라."
차영의 앞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불변의 법칙>이 놓여 있다. "이 책 완전 괜찮은 것 같아, 당근으로 사려고. 두고 보기에 괜찮은 책인 것 같아."
간만에 책을 사겠다는 말에 심희가 눈길을 돌린다. '모건 하우절'. 무언가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일했을 법한 이름이다. 이름부터 모건이라니. JP모건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걸까?
참) JP모건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주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금융기업.
차영이 말했다. "작가가 월스트리트 기자였데, 경제 기자. 책도 경제랑 아주 상관없진 않은데, 사실 별 상관없다고 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내용이야."
"제목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을 23개나 찾아서 썰을 풀어놓은 책이지. 400쪽에 달하는 책 치고는 술술 읽혀. 2~3시간 만에 본 것 같아. 유튜브로 푸는 썰을 듣는 느낌이랄까?"
"왜, 그런 거 있잖아. 당연한 얘기를 당연하지 않게 재밌게 풀어내는 사람. '김창옥 교수' 같은. 모건 하우절도 비슷한 느낌이야. 그리고 각 챕터마다 분량이 짧아서 그런지 여운이 좀 더 길게 남더라고."
차영이 시켜놓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맺힌 물방울이 테이블에 떨어진다. 차영이 휴지로 훑었지만 머지않아 다시 떨어지겠지.
차영이 얼음을 휘젓는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걸 알아도 삶에 적용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잖아.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적절한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같아."
"그중에서도 '확실성과 불확실성'에 대해 얘기한 부분이 웃기거든, 들어봐."
"'영원토록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하겠어요'라는 말. 당신은 언제 쓸 것 같아?"
뭐 이런 당연한 말을. 하지만 심희는 신중한 편이다. "글쎄. 내가 자기한테 자주 하는 말이네?"
차영은 능청스럽게 말을 돌리는 심희가 익숙하다. "ㅎㅎ 자기는 잘 안 넘어가네. 이혼하기 5일 전에 한 말 이래. 이 예시를 들으니 사람은 불확실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확 와닿더라고."
"'결코'라는 말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 해. 그래서 불확실성에 대비할 때는 조금 과하다 싶은 게 좋은 거지."
"하지만 책은 그러면서도 매사에 지나치게 비관적이어서도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아. 신중하되 때로는 낙관적일 필요가 있다는 거지. 비관적인 사람에게 발전은 없으니까."
"책은 이런 식으로 얼핏 모순인 개념들이 인생에 어떻게 잘 버무려지는지 썰을 풀고 있어. 그리고 '인생은 원래 힘들다' '쉽게 풀리는 건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들이 인생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얘기해 주지."
"요즘에는 잘 없는 것 같은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해주셨을 법한 얘기들인 것 같아. 겪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얘기들 있잖아."
차영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가로등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가로등을 쳐다본다. 그리곤 자기 갈 길을 간다.
"난 유독 살면서 불안할 때가 많은 것 같아.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는 경우도 대부분이고. 뭐랄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엄청 시니컬해지거든."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이런 책을 읽는다고 내가 바뀔까' 하는 그런 생각. 아무래도 안 읽은 사람보다는 나을 것 같긴 한데 딱 그 정도거든."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었지만 난 여전히 인간관계가 힘들고, <역행자>를 읽었지만 여전히 순리자의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아는 것과 깨닫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인 것 같아. 아니 다른 차원의 문제지. 아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 사람들이 만약 모두 진리를 깨달으면 어떻게 될까?"
심희가 차영을 바라본다. 그녀의 눈은 평소보다 사뭇 진지하다.
심희가 말했다. "글쎄, 겉으로 봐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아주 작고 미묘한 변화만 생기지 않을까? 내가 생각한 진리를 깨달았다는 게 맞다면 말이지."
"진리라는 게 별 게 있을까 싶어. 티끌 모아 태산이고, 꾸준하게 노력했다면 실력이 오르고, 공짜는 없고. 뭐 이런 거라고 생각하니까."
"진리를 깨달았어도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건 여전히 인내해야 할 게 많고, 시간도 걸릴 거야. 나와 맞는 지는 충분히 해봐야 아니까 힘든 게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거고."
"그래도 하나는 바뀌겠네. 초조해하거나 불안해 하지는 않겠다. 조금 여유가 생기는 거지. 남을 이해하거나 용서하고,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여유 말이야. 그렇지 않을까?"
차영이 말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자기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심희가 눈을 번뜩인다. "그래, 그래. 아주 잘 듣고 있어. 아주 흥미롭게 ㅎㅎ"
차영이 슬며시 미소 짓는 심희를 째려본다. "그래. 맥 빠지네 ㅎㅎ"
"아무튼. 그전에도 이런 책들은 많이 읽은 것 같거든. '인생의 진리' '성공의 법칙' '인간관계론' '자기 관리법' 등 종류도 엄청 많이."
"하지만 그게 다 해답이 되진 않았던 것 같아. 뭐랄까. 책들이 하는 말이 틀리진 않는데 2%씩 부족하다는 느낌이랄까? 근데 그 2% 때문에 결국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거 있잖아."
"<불변의 법칙>이 전에 없는 새로운 내용을 다루진 않거든. 하지만 좀 다르게 느껴져. 그게 뭘까 고민해 봤는데, 난 그게 자기가 아닐까 싶어."
"내가 막 뭐라고 해도 늘 자기가 멀리 안 가고 옆에 있기도 하고. 또 내가 괜찮아지면 이런저런 얘기해 주니까. 그 얘기가 그 얘기지만 다르게 들리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고민도 많이 하게 되고."
"난 그게 부족한 2%가 아닐까 싶어. 지금은 말로 잘 표현 못하겠지만."
심희는 아까부터 계속 싱글벙글이다. "ㅎㅎㅎ 으이구, 귀여운 공주님. 자기는 잘하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심희가 차영의 두 볼을 잡아 늘린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보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차영이 더 이상 그들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것도 모르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