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미쓰다 신조, 2016)
스물두 살의 여름밤. 영화 <컨저링>을 보기 위해 안개가 자욱했던 도로를 스쿠터로 뚫고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영화에 미쳐 있었고, 비가 오나 눈이 와도 주에 1번은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했죠.
영화 말고는 할 게 없기도 했고, 혼자서 영화 보는 것만큼 고상한 취미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종합예술을 보고 있자면 인생이 무엇일지 같은 쓸데없는 고민도 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장르도 가리지 않고 봤었습니다. 특히 가끔 보는 '호러영화'는 늘 간담이 서늘하게 하지만 이상 야릇한 기분이 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담력이 센 편은 또 아니라서 조마조마하면서 보지만, 또 찾게 되는 그런 매력이죠.
이번에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테이프>를 고른 것도 그런 과정의 일환입니다. 그 맛이 그리워졌거든요.
미쓰다 신조는 일본의 저명한 미스터리호러소설 작가입니다. 저서가 엄청 많은 다작(多作)하는 작가죠. 팬층도 엄청 두터운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하신지는 잘 모르겠네요.
동네 도서관의 일본 소설 코너에는 유독 미스터리, 추리물 이 많은데 한쪽에 미쓰다 신조의 책을 시리즈 별로 구비해 뒀더라고요. 분명히 프랑스 소설 코너에 있는 기욤 뮈소 소설보다 많았습니다. 유명한 건 뮈소가 훨씬 유명할 겁니다.
호러소설을 볼까 하던 찰나에 표지가 섬뜩한 게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주 음산하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느낌입니다. 어휴;;;;
호러소설은 철저하게 재미 위주라 주제나 교훈이랄 게 없습니다. 끽해야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마라' 정도죠. 그걸 교훈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그 때문에 개연성과 전개가 특히 다른 장르보다 중요합니다. 절대로 뜬금없으면 안 되고, 떡밥 던지기와 회수도 중요합니다. 무척 친절하게 서술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불친절하면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신조는 대단한 작가가 맞습니다. <괴담의 테이프>는 단편집이라 엄청난 플롯을 가져갈 순 없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플롯을 구성하는 데 도가 텄다는 느낌을 줍니다.
친구가 무서운 얘기를 해주는데, 그 친구가 '엄청난 썰꾼'인 느낌입니다. 장르가 호러니까 무섭기도 엄청나고요.
작가는 끝에 가서는 모호하게 서술했던 내용들을 풀어주는데, 그걸 보는 묘미도 있습니다. 시험을 보고 답지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추리가 맞았는지 채점하는 맛도 있죠.
책을 보면서 이걸 영화로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를 보는 건 거의 일상과 같았거든요. 여기저기서 무료 티켓을 주기도 했고, 영화를 좋아했으니까요.
하지만 코로나를 거치고 영화값도 비싸진 영향일까요. 요즘엔 책을 읽습니다. 영화를 많이 본 덕분에 책을 읽어도 상상이 잘 되더라고요. 어떤 느낌을 주는 장면일지 잘 그려지기도 하고요.
호러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에 대한 고민 위에 쓰여집니다. 그리고 인기가 많은 작가 많은 작가라면 그 포인트를 제대로 알고 있다는 거죠.
호러는 장르 특성상 주류가 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괴이, 괴담, 도시전설,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호러소설'은 꽤나 괜찮은 별미가 될 겁니다. 무엇보다 읽는 사람의 속도에 따라 '맞춤형 공포'를 선사하거든요.
오늘은 집사 손을 꼭 잡고 자야겠습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참 다행인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