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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댁 고양이 May 27. 2024

생명보험은 인간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아니다.

검은 집 (기시 유스케, 1997)


달이 가득 찬 저녁. 차영이 남편 심희를 뒤로 하고 공원을 걷고 있다. 심희는 출장을 다녀와 뻗어버렸다. 오창에서 획기적인 사업가를 만났다나 뭐라나. 왕복  5시간을 운전했으니 지금은 그냥 두는 게 나으리라.


공원은 환하지만 왠지 스산한 기분이다. 방금까지 <검은 집>을 읽었기 때문이다. '호러소설 추천'이라고 검색하면 늘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책이다. 


보험설계사 이야기라 재미없을 것 같았지만, 분명히 추천할만한 이유가 있는 책이다. 작가 기시 유스케도 다른 호러소설 작가들처럼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다.




달빛이 유난히 밝다. 차영은 잠시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커플이 한 쌍, 운동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한 명 그리고 초록색 병을 왼손에 쥐고 팔자로 걷는 50대 남자가 한 명.


차영의 간담이 서늘해진다. 50대 남성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 바로 눈을 돌렸지만 남자는 계속 나를 보는 것 같다. 


차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빠른 걸음으로 그리고 남자의 사각지대로 들어서자마자 전력질주했다. 뒤를 돌아볼 순 없었다. 


집까지는 10분이 걸린다. 차영은 곧장 집으로 뛰어갈지, 집에서 꽤 먼 거리의 카페에 들렀다 갈지. 길 건너로 보이는 파출소로 갈지 고민했다. 경찰서에 가면 뭐라고 하지? 차라리 심희에게 전화할까? 왜 그는 이럴 때만 없는 걸까.


공원 쪽을 돌아봤을 때 차영은 50대 남성이 그 자리에서  여전히 자기를 보고 있단 걸 깨달았다.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눈물이 났다. 다리가 후덜거렸지만 멈출 수 없었고 공원이 안 보일 때까지 뛰었다.


집까지 도착했을쯤 다리가 풀렸다. 심희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심희를 흔들어 깨우니 무슨 일이냐고. 


차영은 무슨 일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심희에게 매달려 거친 숨을 고를 뿐이다.



사실 차영도 알고 있다. 50대 남자는 그냥 나를 보았을 뿐이란 걸.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도망친 내가 탐탁지 않았겠지.


하지만 차영은 그 순간 '공포'를 느꼈다. 일면식도 없는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검은 집>에 너무 몰입한 탓일까? 서슴없이 타인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나는 매일 가는 공원에서 도망쳐버렸다.



생명보험이라는 것은 통계적인 사고를 아버지로, 상호부조 사상을 어머니로 해서 태어난 위험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지 결코 인간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아니다.


차영은 책의 말미에 적혀 있는 주제처럼 보이는 문구를 보고 생각했다. 공포라는 본능 앞에 이런 교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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