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찾기로 시작된 책 이야기
오십이 넘고 아이가 대학을 가고 나니 비로소 나에게는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한강이 보이는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살면서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고, 한 끼 식사로 1,000만 원을 받고 밥을 먹어준다고 했다. 그의 파행적인 일들이 뉴스로 나오자 감명 깊게 읽었다던 독자도 그를 비난하고 힐난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처음부터 욕했으니까 감정적으로 손해를 볼 일이 없었다.
돌아가서 얘기를 이어가자면 아이의 유학과 맞물려 나의 학업도 끝이 났다. 그 사이에 직업도 바뀌어 시간적 여유가 조금 생겼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생기니 보이는 것이랄까? 누리고 싶은 재미가 생각이 난다.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하면 행복한 건지 보이기 시작했다. 자라면서 꾸준하게 해 왔던 일 중 하나는 독서였고, 종이에 대한 집착이고 문구에 대한 사랑이다. 연필을 집고 종이에 쓰는 일을 하면 즐겁다. 책을 읽고 써 보는 것 역시 재미있다. 재미를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이래저래 배워본다. 뭘 배운다는 게 참으로 재미가 있다.
<<갈매기의 꿈>> 에서 리처드 바크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운다는 것은 세계를 개척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신의 한계를 알아내고 그 한계를 넘어서서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결국 배움이란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이고, 거기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인생을 돌이켜 보면 어느 시기이건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조금씩 혹은 충분하게 느끼면서 살아왔다. 재미있게 사는 일에는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즐거움이란 거 조금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한 달 동안 숙제도 하지 않고 밥만 먹고 책 100권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재미있었던 일로 생각한다. 아버지가 중학교 여자 동창에게 “한국 장편. 단편 소설 100권”을 산 덕분에 읽을 수 있었다. 그 일로 엄마와 아버지는 좀 다퉜다. 없는 살림에 출판사 전집을 덜컥 계약한 아버지가 엄마는 야속했을 터 참지 않고 며칠을 다투고 역정을 내셨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응원했었다.
“우리 아부지는 진짜 뭘 좀 안다니까...먹물이 있어야지. 사람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그 공간에 우리의 반응을 선택하는 자유와 힘이 있을 거고 그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렸다고 해석했다. 재미있게 산다는 건 어떤 자극에 반응을 해야 한다. 그래야 즐겁든지 짜증이 나든지 행복하든지 할 것이니까.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가 있다. 참 예쁘지 않다. 진짜
분명코 노력한 만큼 행동한 만큼의 뜻대로는 될 텐데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살면서의 좋은 기억은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선택하고 반응하고 행동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분명코 우리의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의 재미있는 삶이 될 그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책 읽기의 재미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재미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첫 번째로는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다. 다음은 안부를 묻는 인사말에서 어떤 일이나 생활의 형편을 이르는 말이다. 세 번째의 뜻에서 좋은 성과나 보람이라고 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즐거운 기분보다도 나는 무엇에 대한 좋은 성과나 보람이 훨씬 재미있다. 열심히 밤을 새워 공부해서 상위권을 누릴 때도 재미있고 최선을 다해서 1등으로 졸업할 때도 그랬다. 생각해 보니, 무엇을 배우고 노력하고 즐겼던 시간이 재미 중 최고 재미다.
50이 넘고 선택한 재미는 ‘글을 많이 읽고 나의 글을 써보고 싶다’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부지런하게 ‘사고의 땔감’을 주워 와야 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태워 열량을 얻어야 한다. 학문적 기초가 충분하면서도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책들을 좋아한다. 내 구미에 맞는 책을 찾는 것도 재미다. 나에게 책은 재미다. 책을 사러 가는 마음도 재미고 책을 고르는 행동도 재미며 책을 읽을 때의 그 영혼은 감미로움이다. 책을 읽고, 필사하고 나의 언어로 글을 쓰는 맛. 그 재미를 좀 더 느껴보려고 한다. 어쩌면 독서일기를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서 모임을 만들어 보고 필사 모임도 해보자. 그리고 더 나아가 독서일기도 써보자. 재미를 찾아보자. 더 재미있게 살아보자.
시기적으로 더 늦지 않은 시기에 나의 글을 쓸 수 있어서 감사한다. 가보지 않은 세계에 들어간다는 건 겁도 나고 기준점이 없어서 불안하다. 글을 쓰는 일은 아득한 미래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지금은 다행히도 길을 잘 찾아와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여러모로 재밌다. 사러 갈 때도 즐겁고 재밌으며 지금은 책을 통해 글을 쓰는 것도 재미난다. 책을 내기 위해 쓰며 지나온 시간도 최고의 재미였다고 생각한다. 이 재미가 나머지 인생을 지배할 거라고 확신한다. 물론 써지지 않아서 힘들 거고 때로는 머쓱함으로도 창피해,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시간을 즐긴다.
어렴풋이 생각했던 책과 관련된 ‘재미’를 조금씩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써 보기도 하고, 찾아보기도 한다. 실은 재미라는 게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기준이 명확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우리 인생은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우리 인생의 홈을 재미로 메꾸면서 살아야 한다. 일하면서 힘든 시간 사이에, 혹은 일이 없어서 힘든 시간 사이에 재미를 찾아 메꾸어 산다면 우리의 삶은 더 보람되고 뿌듯하지 않겠나 싶다.
좋아하면서도 재미있는 일. 그러면서 스스로 멋있는 일은 ‘독서’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