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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Jul 10. 2023

내 안에 너 있다

ABOUT 꼴마이

     

“ 아! 미치겠다. ”


 님이가 팬티만 입고 계속 걸어온다. 아침에 학교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새 참지 않고 또 오고 있는 것이다. 님이는 진주 알알이 색깔로 알록달록 유치하기 짝이 없는 목걸이를 좋아한다. 외할머니가 장날에서 사 온 그 목걸이를 잠자기 전 말고는 목에 걸고 다닌다. 몇 알의 진주는 껍데기가 벗겨져 있고 얼룩덜룩하게 흠이 져 있다. 그래도 눈 뜨면 걸고 거울 한 번 보고 머리를 찹찹하게 빗는다. 5대5 가르마를 탄 다음 물을 얹어서 납작한 상태를 유지한다. 밥을 먹고 나서 언니들이 다니는 학교를 어슬렁대면서 복도를 돌아다닌다.      


 학교 정문 바로 앞 골목에 세 들어 살던 우리 집은 학교 조회를 하는 날이면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까지 방 안에서 들을 수 있다. 그럼 동네에서 네발자전거를 타던 그녀는 학교에 온다. 마치 마을 축제를 즐기러 온 꼬마 마녀처럼 기가 차게 나를 찾는다. 씨익 웃다가. 슬며시 옆에 와서 있다.

“나는 도저히 창피해서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급기야 나는 집에 와서 울었다.     


 학교에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학교 수업이 반별로 나뉘어 있다. 한 반이지만 오전·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받는다. 전학을 오니 오전, 오후반 제도가 헷갈린다. 따라가기에 조금 실수가 생겼다. 동생들이 많아서 나 혼자 알아서 학교에 가고, 챙겨야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챙겨 줬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도 그럴 것이 학교를 가는 것에 실수가 잦았다. 지각의 건수도 많았다. 어떤 날은 오후에 가니 수업이 다 끝난 뒤였다. 그런 날이면 학교 운동장 귀퉁이에 있는 아지트에 간다. 철봉과 나무 사이의 그늘진 곳에 앉아 있곤 했다. 나른함이 밀려오는 오후 시간에 텅 빈 운동장에서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또래의 친구들보다는 성숙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정신없는 동생들 틈에서(물론 정신이 없다는 건 나의 기준이긴 하지만) 자연스레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많이 힘들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지금껏 나는 특별하게도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다. 담담한 마음이 습관이 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운동장의 구석지고 그늘진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혹은 바람을 맞는 일이 참 좋았다. 북적대던 집으로부터의 탈피, 교실의 복닥거림에서 나와서 느끼는 선택적 자유로움이 나를 더 사색적이고 성숙하게 했다. 그 어느 곳으로부터의 속박이 아닌 바람이 주는 자유를 만끽하는 그것이야말로 나의 세상에서 동떨어진 케렌시아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  병약하고 많이 아팠다. 부실했다는 표현이 딱 맞다. 또 소심했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만은 단 한 번도 발표를 해 본 적이 없다. 6학년 졸업할 때까지 수업 시간에 손을 들어 발표를 해 본적이 없다.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이지만 너무나 부끄럽고 심장이 뛰어 내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 음악 시간에 실기시험을 치는 날에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부끄럽고 버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도시락으로는 죽을 싸서 다니며 허연 피부에 키가 멀뚱한 외모만 보더라도 당차거나 씩씩해 보이지 않았겠지. 선천적으로 신장이 나빠서 초등학교 시절 도시락은 죽이었다. 반찬은 된장이었는지, 두부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고춧가루가 없는 밍밍한 음식이었으리라. 그렇게 힘도 없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숫기 없이 발표도 잘못하는데 “우리 정님이” 팬티 입고 출동하신다. 지금 생각해도 등에 땀날 일이다.

“정님아 도대체 와그라노......”  

   

 그녀는 납작하고 동글동글한 얼굴과 흰 피부를 가졌다. 언제나 말쑥하게 5대5 가르마를 타고 팬티 안에 러닝까지 다 쑤셔 넣어 본인의 단아함을 자랑했다. 엄마가 어디 가서 얻어온 파우치가 그녀에게 가서는 클러치로 둔갑한다. 옆에 끼고 나선다. 그  다음은 알알이 색 벗겨진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건다. 

엄마가 말했다.

“ 밥 먹기 전에 어디나가노? 퍼뜩 들어와야 된데이. 가시나야”    

 

“엄마~내  동네 한 바퀴 돌고 오께...어제 봤던 새가 나를 보러 또 올지도 모르니까...”

특이하다. 진짜 특이하다. 


둘째가 그랬다.

“큰언니야..저년은 미친게 분명하다. 학실하데이...학실해...”

둘째는 위로 하나밖에 없는 언니인 나를 큰언니라 불렀다.      


“그래. 내 생각도 비슷하다...내가 봉께 정상 아닌게 맞데이”

이렇게 말하고 둘러보니 님이는 벌써 엄마의 큰 로퍼를 신고 나갔다. 


‘진짜 웃기는 거 맞다. 정상 아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그녀의 담대함이 부러웠다.     

 유년의 강렬한 단상에 항상 그녀가 있다. 딸이 다섯인 우리 중 가장 독특하게 유년을 보낸 우리 집 대표 멋쟁이 꼴마이 정님이. 그녀의 사주에 도화살이 있단다. 그래서 이름도 특이하게 한글 이름이다. “님”이라는 단어가 이름에 있어야 한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팬티 입고 돌아다니던 님이는 학원장이 되어 학원을 운영한다. 아마 저 닮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호응하고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숫기 없이 힘없던 나는 활기차고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나의 유년은 자유로웠으며 행복했으며 자랑스럽다. 그날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던 철봉 옆 그늘진 구석은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한 웅크림이 아니었을까? 그때 이미 나는 책을 쓰고 소설을 짓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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