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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Nov 04. 2023

좋은 엄마 콤플렉스

완벽한 엄마보다 나다운 엄마 되기 

결혼 후 4년 동안 네 번의 유산과 한 번의 조산을 했다. 나는 임신은 잘 되는 편인데, 임신 유지가 잘 안 되었다. 습관적 유산 등 여러 검사를 해보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의사는 이러한 현상이 반복된다고 해도 산모의 잘못은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험관 임신을 권했다. 


나는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고, 사람 만나기가 싫어졌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번 위로받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고, 내 안으로 점점 더 깊이 숨어들었다. 


모든 게 다 싫고, 싫증이 나서 도피하듯 광주에서 나주로 이사를 온 지 3개월 만에 임신을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이제는 내 삶을 살아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아이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목숨과 같이 소중한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내가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나의 온 정신은 아이에게 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가 된 순간부터 '나 자신으로의 나'는 없어지고, '엄마로서의 나'만 존재하게 되었다. 모든 것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늦깎이 초보 엄마였던 나는 맘카페에 의지하여 밤낮으로 들락날락하며 매일 업데이트되는 새로운 정보에 목을 매게 되었다. 


'100일 아이의 발달 단계', '돌아기에게 꼭 필요한 육아용품', '5개월에는 꼭 이걸 먹이세요' 등 엄마가 되기 전에는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던 정보가 나의 생명줄이 되었다. '점퍼루는 꼭 있어야 해', '국민문짝은 없어서는 안 될 아이 필수품이지'. 나의 머릿속에는 내 아이와 같은 개월수의 다른 아이들이 갖고 있는 물건이 꽉 들어찼고, 그 개월수에는 꼭 육아용품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줄 알았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거르지 못한 정보의 홍수 속에 빠졌고, 다른 엄마들이 좋다는 건 내 아이에게 다 주려고 노력했다. 






내 인생은 오로지 육아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늘 바쁘고 혼란스러웠다.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느리지는 않은지 등에 온 신경이 쏠렸다. 세상의 중심은 나고, 내가 키우는 아이가 나의 중심인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에게 중요한 것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더 중요했다. 그 시기에 꼭 해야 할 과업처럼 촉각을 세우고 아이를 지켜봤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발달 과정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아이마다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고, 아이마다 발달하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와 허무함이 내 안에 가득 찬 후에야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은 질주 본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동안 힘들게 했던 '타인의 기준'에서 흔들리자 말아야지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안에 들어있던 '좋은 엄마 콤플렉스'를 내려놓으니 내 아이가 더 예뻐 보였다. 그리고 나도 보였다. 나를 잃어버린 채 엄마로만 살고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나는 엄마로 태어난 게 아닌데, 엄마로만 살고 있었다. 


'집안일을 지금 당장 해야 하나? 오늘 안 치운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한 가지 기능만 있는 장난감보다 다양한 놀이를 하며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찾아볼까? 그렇지 않아도 집안 가득 아이용품뿐 인데'

'내가 나를 잃어버린 채 엄마로만 살면 아이가 컸을 때 이런 엄마를 좋아해 줄까?'

'아직 아이가 어려서 많은 시간을 낼 수는 없지만, 나를 위한 시간을 약간이라도 가지면 어떨까?'


그동안 엄마 노릇만 하느라 기능을 멈췄던 뇌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 생각하니 의문과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도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 새삼 나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다.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 갇혀서 맘카페를 수시로 들락날락하고, 완벽한 엄마가 되어 보겠다고 전전긍긍했던 내가 우습게 보였다. '그래! 난 이대로도 충분히 멋진 엄마야. 아이에게 많은 것을 주지 않아도 아이는 잘 클 거야.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아. 난 가이드만 해 주면 돼!'


그 후 나는 변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일에 열중했다.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해 줄 약간의 시간을 나에게 허락했다. 내가 원하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하고 노력했다. 아이에게 향해 있던 나의 시선 중 일부를 나에게로 돌렸다. 엄마에게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한 일임은 맞지만, 육아만을 위해 나를 버리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나다운 '나'를 찾으면 된다.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사랑하면 나는 더욱 행복해진다.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가정도 평안해질 수 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우리 이제 좋은 엄마 콤플렉스는 내려놓고, 나 자신으로서의 내가 되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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