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러도 괜찮아, 오늘도 수고했어!
"아이 나왔습니다. 아들입니다."
"아버님! 아이 손가락, 발가락 개수 맞는지 확인하세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드디어 내가 엄마가 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나는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노산으로 아이를 낳았다. 오래 기다린 시간만큼 우여곡절이 많았고, 또 그만큼 설렘으로 가득 찼다.
의욕에 불탔던 늦깎이 엄마는 아이를 낳은 날부터 바로 모자동실을 신청했다. 신생아실에 올라간 아이는 건강 체크를 하고, 깨끗하게 목욕한 후 다시 나의 품에 안겼다. 아이를 낳은 지 2시간 만의 일이었다. 산모는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아이를 돌봐야 했지만, 아이와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급하게 아이를 받아들었다.
뱃속에서 떠나보낸 다른 아이들처럼 이 아이도 떠날까 봐 열 달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임신 기간 내내 아무것도 못 한 채, 화장실 갈 때만 빼고는 침대에 누워서 생활했다. 내 품에 안긴 아이는 여섯 아이의 몫을 살아갈 것이다. 내 팔뚝보다 작은 아이가 사랑스러워 눈물이 주룩 흘렀다.
그러나 설렘과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출산 준비를 하면서 관장했던 게 화근이었다. 조리원으로 옮기던 날 변비가 심하게 와서 손가락으로 파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수유는커녕 내 몸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어 엉엉 울었다. 나는 왜 출산 후 변비가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는가? 애 이런 고통이 있을 수 있음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가? 출산의 고통보다 변비의 고통이 더 심해서 더 이상 아이는 못 낳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를 잘 챙기려면 내 몸조리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산후 마사지를 받고, 좌욕하며 체력 회복에 힘썼다. 아이는 신생아실에 맡기고 수유 전화가 올 때만 가서 수유를 했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먼저 내 몸을 추스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단둘이 남겨졌을 때는 기대감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왔다. 과연 초보 엄마인 내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나 혼자서 이 핏덩이를 한 인간으로 키워낼 수 있을까? 그것도 잠시, 아이는 나에게 생각할 틈은커녕 밥 먹을 틈조차 주지 않았다.
신생아는 식도가 짧아서 잘 토하는데, 우리 아이는 특히 심했다. 처음에는 젖을 먹을 때마다 게워 내니 어디 아픈 게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정기 검진일을 맞춰 병원에 갈 때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면, 아이가 어려서 당장 할만한 검사가 없으니 좀 더 지켜보자는 말씀만 하셨다.
수유 후 트림을 시키면서 한참을 안고 있는 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수유 발이 좋았던지 아이는 태어난 지 3개월이 되기도 전에 몸무게가 10kg을 넘기고 있었다. 수유할 때도 안고 있는데, 트림한 후에도 30분 이상을 더 안고 있으니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지역맘 카페를 보면 '100일의 기적', '200일의 기적', '돌의 기적'으로 천국을 맛보았다는 글도 많던데, 나에게는 그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수유 후 곧바로 잠들던데, 우리 아이는 방바닥에 등 대고 자는 일이 거의 없었다. 새근새근 소리가 들려 잠들었나 싶어 아이를 내려놓으면 바로 자지러지게 울었다. 엄마들은 아이의 등이 방바닥에 닿는 순간 잠에서 깨는 것을 보고 등 센서가 발달했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는 등 센서가 최고치로 발달한 아이였는지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 안고 있어야 했다.
그래도 안겨서 자고, 잘 토하는 것은 신생아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견디기 힘든 건 배가 고픈 데, 밥을 먹을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똥이 마려운데,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었다. 잠은 쏟아지는데, 수시로 깨서 아이를 돌봐야 했다.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처리하고, 무언가 먹어야 힘을 내서 육아를 잘할 텐데,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 짜증이 솟구쳤다.
신랑에게 하소연 하면 '아이가 잘 때 잠깐 시간 내서 잠자고, 밥 먹고, 화장실 가면 되지, 왜 그걸 못해!'라는 핀잔만 들을 뿐이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세계라 속상하고, 육아에 도움을 주지 않는 신랑에게 화가 났다.
다른 집은 친정엄마, 시어머니, 도우미 이모가 도와주고, 신랑이 육아를 함께 한다는데, 나는 혼자서 육아를 독점하다 보니 여유시간을 낼 수 없었다. 아이가 울 때 나도 같이 울면서 육아를 했다. 서운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점점 커져 누군지도 모를 이들에게 원망을 쌓기도 했다. 나 빼고 남들은 다 육아를 잘하는 것 같은데, 나 혼자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졌다.
그때는 엄마가 되는 일은 '모든 엄마에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행복해 보여도 그 안에는 다 힘듦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울 곳이 있었다는 얼마나 좋았을까?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힘든 감정과 나쁜 감정들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면 자존감이 낮아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행복한 마음이 든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낳아 키웠다는 뿌듯함이 가슴속 깊이 자리한다. 엄마도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에 아이를 키우며 조금씩 성장한다. 아이의 나이만큼이 엄마의 나이다. 완벽한 엄마는 세상에 없다. 좋은 엄마보다 나다운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서툴러도 괜찮아. 오늘도 수고했어!' 모든 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