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조급한 마음 내려놓기
아이가 5살이 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른 집 엄마들은 3살 때부터 아이를 어떤 유치원에 보낼지 고민한다. 사립유치원, 공립유치원, 국립유치원, 병설유치원, 영어유치원 등 유치원 종류도 많다. 그런데 나는 유치원에 보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떤 아이는 3살에 기저귀를 떼고, 어떤 아이는 5살에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 기저귀 떼기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은 보육과 교육을, 유치원은 교육을 위주로 운영한다. 기저귀를 떼지 못한 우리 아이가 교육의 중심인 유치원에 입학한다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11월 끝 무렵에 태어나 또래 아이들 사이에 있으면 체격이 작고, 행동이 어리게 느껴지니 엄마로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린이집에 가면 선생님의 목을 끌어안고, 얼굴에 뽀뽀하는 꼬꼬마를 둔 엄마인 나의 선택은 다른 고민 없이 보육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기존 어린이집에 그대로 다니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다. 4살 반에서 5살 반으로 진급한 친구들을 보니 기저귀 떼기를 완료하지 못한 아이는 15명 중 우리 아이를 포함하여 단 둘 뿐이었다. 민망함과 함께 담임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다.
"이제 기저귀 빠이빠이 할까? 기저귀가 필요한 동생들에게 주면 어떨까?"
"기저귀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기저귀 좋아요."
어쩌다 한 번씩 물어보면 아이는 단호하게 싫다고 말했다. 한 번 하기 싫다고 하면 절대 하지 않는 아이, 한 번 먹기 싫다고 하면 절대 먹지 않는 아이인 우리 아이는 심지가 아주 굳은 편이다. 기저귀 떼기가 너무 늦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난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며 아이의 마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성장과 발달은 아이마다 다 다르고, 뭐든지 때가 있는 법이다. 우리 아이에게 기저귀 떼는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엄마가 기다려 주는 게 맞다.
어느 날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갔다가 뼈 때리는 말을 들었다. 내가 아들이 다섯 살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기저귀 떼기를 완료하지 못했다고 말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한마디 했다.
"래몽이는 이제 43개월이잖아. 아직 아기야. 주변에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봐봐. 기저귀 차고 학교 다니는 친구들 있어? 학교 가기 전까지만 떼면 돼. 래몽이를 믿고 기다려 줘."
친구의 말을 들으니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를 믿고 기다린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내내 마음 졸이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해놓고, 내내 마음속으로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나 보다.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화장실에 다녀온 아이에게 기저귀를 채우는데(여름이라 낮에는 팬티를 입혀 생활하고, 저녁에는 기저귀를 채워 재웠다.), 자주 읽어줬던 <콧구멍을 후비면>이라는 책이 번뜩 생각났다.
이 책은 코를 계속 후비면 한쪽 콧구멍이 점점 커져서 짝짝이 되고, 배꼽을 계속 만지면 구멍이 뻥 뚫리고, 손가락을 계속 빨면 엄지손가락이 엄청나게 커지는 이야기이다. 아이가 바른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인데, 글과 그림이 아이들의 행동과 비슷해 엄마가 봐도 재밌다. 엄마가 손, 발 다 써서 과장되게 읽어주니 아이가 자주 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었다.
"래몽아, 콧구멍을 후비면 책 기억나? 코를 계속 후비면 한쪽 콧구멍이 엄청나게 커져서 짝짝이 되는 책 말이야. 기저귀를 계속 차고 있으면 고추가 되게 되게 답답할 것 같아."
"기저귀 안 할래요. 동생 주세요."
기저귀를 입히며 지나가듯 아이에게 딱 한 마디 했는데, 아이는 바로 기저귀를 벗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쉽게 기저귀를 포기한다고?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 안에 어른이 들어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쉽게 기저귀 떼기를 해내니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였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을 해 봤자 자신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아이였다. 납득이 가면 뭐든지 잘 해내는 아이다. 엄마가 조급한 마음을 가져봤자 어차피 안 될 일은 안 되고, 될 일은 된다. 육아를 엄마 중심이 아닌 아이 중심으로 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방관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엄마가 알맞은 때와 장소에서 아이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게 필요하다.
그렇다고 단번에 배변 훈련이 끝난 것은 아니다. 놀다가 쪼그리고 앉아서 쉬를 하고, 자다가 이불에 세계지도를 그리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속으로는 열불이 터졌지만, 아이에게는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배변 실수를 한 아이가 엄마보다 더 속상하고, 민망할 것이다.
"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 점점 실수를 덜 하게 될 거야. 엄마도 아기 때는 많이 그랬어. 괜찮아."
"쉬하면 닦으면 되고, 이불은 빨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는 단지 아이의 의욕을 북돋아 주면 된다. 아이의 마음에 죄책감이나 실망감을 심어주지 말자.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5살까지 기저귀 떼기를 하지 못해서 엄마 속을 태우던 아이는 올해 초등학생이 되었다. 친구의 말처럼 초등학교에 들어가 보니 기저귀를 하고 다니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말이 느린 아이는 언젠가 말하는 법을 배우고, 걷는 게 느린 아이는 결국엔 걷는 법을 배운다. 기저귀 떼기 또한 마찬가지다. 엄마가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조바심을 내지 않으면 결국 아이는 발달 과업을 이루어 낸다. 아이마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다른 집 아이와 우리 아이를 비교하며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를 다그칠 수밖에 없다. 엄마의 불안한 마음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우리 아이가 조금 늦더라도 언젠가는 해낼 거라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엄마에게 여유가 있어야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여 줄 수 있다. 육아는 꼭 완벽하게 수행하는 과제가 아니다. 100명의 아이가 있다면 100가지의 육아법이 있다고 했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하는 것이고, 아이는 제대로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