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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Nov 07. 2023

왜 그렇게 아이에게 화를 냈을까?

아이의 행동보다 나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 보기 



좋아해서 자주 먹던 양념치킨인데, 아이는 그날따라 치킨이 맵다고 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음료수를 5개째 마시고 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에서는 열불이 났다. '저러다 춥다, 배부르다, 안아달라 하겠지.'


"5분 후에 화상영어 수업 들어가야 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는 배가 아프다며 안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잠깐만 누웠다가 수업하자."

아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고, 꼼짝거리지도 않았다. 


'배가 몹시 아픈가? 아니면 피곤해서 그러나?'

'지난 시간에도 누워있다 잠들어서 수업에 빠졌는데, 오늘도 안 한다고 하지는 않겠지?'

'설마 화상영어 수업이 듣기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시간 다 됐으니 수업 들어가자. 선생님이 기다리실 거야."

"지난주에도 자다가 수업 빠졌잖아. 자꾸 수업 빠지려면 화상영어 하지 마!"

"알았어. 하면 되잖아!"


처음에는 상냥하게 말했지만, 움직임이 전혀 없는 아이를 보며 결국 나는 화를 냈다. 엄마의 불같은 화에 아이도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치킨을 먹은 후 기분 좋게 화상 수업에 참여하길 바랐는데, 상황이 어이없이 흘러가 버렸다. 






8살 아이는 좋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얼굴에 표현하며 화상 수업을 시작했다. 다정하게 오늘의 기분을 묻는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3분도 지나지 않아 수업에 집중하며 깔깔 웃었다. 즐겁게 수업에 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가 낸 수업료가 아까워서 그랬을까?'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그런가?'

'아이가 살면서 조금만 어려워져도 쉽게 포기하게 될까 봐 걱정돼서 그러나?'

'기다릴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가?'


나는 왜 그렇게 아이에게 화를 냈을까?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며 내 감정을 들여다보니 화났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엄마가 체력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 아이에게 더 많이 화를 냈던 것 같다. 그때는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육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큰데, 방법을 모르니 아이가 잠든 새벽에 인터넷을 떠돌며 정보를 수집했다. 새벽에 온라인에 올라온 정보로 육아를 배운 후 낮에 실무 적용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육아를 하며 엄마의 정신은 피폐해졌고, 잠이 부족한 날들이 이어졌다. 점점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고, 아이에게 화내는 일이 자주 생겼다.


하루 24시간 집 안에 콕 박혀서 내 삶도 없이 사는데, 아이가 클수록 더욱 힘들어지기만 하는 육아 때문에 아이가 미웠다. 내 마음도 몰라주는 신랑에게 화가 났고, 나만 고생하는 것 같아 억울했다.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도대체 엄마는 언제 쉬어!' 






화내지 않고 다독여서 아이가 제 할 일을 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 아이에게 화를 낼까? 어쩌면 아이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내가 정한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아이를 이끌어 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불같이 화를 쏟아낸 게 아닌가 싶다. 


아이는 아이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니고, 하나의 인격체이다.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엄마가 원하는 방법이 아닌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보자고 다짐해 본다. 






"아까는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화상 영어 할 시간이 다 됐는데, 네가 누워만 있어서 화가 났어."


나는 잠자리에 누워 낮에 화낸 것에 대해 사과했다. 아이의 행동을 탓하지 않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으로 대화를 끝냈다. 아이를 꼭 안아주고, 뽀뽀해 준 후 재웠다. 


이제 나는 아이를 재우며 같이 잠든다. 더 이상 아이가 얼른 잠들길 기다리지 않는다. 억지로 잠을 이겨가며 새벽 내내 휴대전화를 얼굴에 떨어뜨리는 일은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육아법이 아닌 아이와 내가 직접 겪으며 배우는 육아법으로 하루를 산다. 


아이를 7년 키우며 모든 아이의 육아가 같지 않음을 알았다. 100명의 아이가 있다면 100개의 육아법이 있다고 한다. 나는 엄마니까 내 아이에게 맞는 육아를 하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려고 한다.  


저녁 늦게까지 깨어있는 대신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 나에 관한 공부를 한다. 엄마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니 더 이상 아이에게 화낼 일이 생기지 않았다. 이것이 아이 공부가 아닌 내 공부를 시작한 이유이다. 엄마들이 아이보다 나에게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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