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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Nov 08. 2023

엄마의 삶에 우울이 찾아왔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엄마.



결혼 후 내 삶은 송두리째 변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 살면서 내 안의 가부장까지 더하니 결혼 전의 자유로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출산 후 내 삶은 아예 사라졌다. 나는 없어졌고, 엄마만 남았다. 


그에 비해 신랑은 결혼 전의 삶이나 결혼 후의 삶에 변화가 없어 보였다. 아이를 낳기 전과 아이를 낳은 후에 사는 삶이 비슷한 것 같았다. 가장의 무게와 심적인 무게는 있겠지만, 겉으로는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회식의 횟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육아에 동참하지도 않았다. 


사랑해서 함께 부모가 되었는데, 나의 삶만 사라진 것에 대한 부당함에 억울함이 더해졌다. 나는 존재하지 않은 채, 24시간 아이에게 맞춰 생활하다 보니 분노가 차올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를 다독이고, 신랑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내 모습을 인지할수록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 같아 우울한 마음이 점점 커졌다. 






왜 육아는 엄마의 몫인가? 왜 나는 홀로 고군분투해야 하는가? 그토록 바라던 엄마가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억울함과 괴로움이 점점 커졌다. 부정적인 마음이 커질수록 아이에게 잘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좌절감도 쌓였다. 아내에게는 있고, 남편에게는 없다는 산후 우울증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기나 한 걸까?


우울은 표현되지 못한 분노가 자신 안으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우울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긍정적인 면을 보지 못하게 한다. 우울한 사람은 자신 안으로 더 깊이 숨을 뿐,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한다. 스스로 빠져나오기 힘든 깊은 수렁 안에 있는 것이다. 


'이대로 살다가는 내가 죽겠다.'

'엄마가 이리 우울한데, 아이는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두려웠다. 가까운 어린이집에 찾아가 울며 애원했다. 


"제발 내 아이를 받아주세요. 이러다 내가 죽겠어요"






6개월을 더 기다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운전 연습을 시작했다. 우울한 사람이 집 안에만 갇혀 있으니 새로운 것이 없어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어디로든 나가야 했다. 아장아장 걷는 꼬맹이를 데리고 집 근처에 갈만한 곳은 많았다. 그래서 운전을 시작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한 후 점차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늘려갔다. 혼자서 마트에 가고 산책을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우울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만의 시간을 채워나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날이 많아질수록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다. 아이가 신생아일 때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게 당연하다.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은 함께 하되, 엄마가 해야 할 일과 아빠가 해야 할 일을 나누어서 해 보자. 엄마 혼자서 모든 육아를 책임지려 하지 말자.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적극적으로 받자. 가족, 지인, 친지, 도우미 아주머니 등 찾아보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보다 감사한 마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도록 하자. 






우울한 마음이 들거든 누구든 붙잡고 이야기해야 한다. 우울은 쉽게 전염된다. 우울한 엄마가 키운 아이는 우울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 내 아이의 미래를 밝게 하고 싶다면 엄마가 먼저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자. 엄마의 마음이 건강해야 아이의 마음도 건강하게 자란다. 


아이에게 못하는 것 같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지만, 엄마인 우리는 잘하고 있다. 한 생명을 세상에 나오게 한 그 경험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가치 있고, 위대한 존재이다. 당신이 엄마라는 이유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나의 삶을 응원한 것처럼 엄마 사람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삶도 응원한다. 우리는 이대로도 괜찮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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