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 Nov 07. 2023

자존감을 높이는 현실적 낙관주의

이혼할까? 이대로는 못 살겠는데...



'이혼하는 게 나을까? 아이가 있으니 이혼은 좀 그렇고, 별거라도 할까? 이렇게 사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아이를 낳은 지, 반년쯤 지났을 때부터 우울감이 찾아왔다. 혼자 낳은 아이도 아닌데, 나 혼자 육아를 독점하는 상황에 화가 났다. 아이는 24시간 내내 어른의 손길의 필요한데,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어른은 나 하나뿐이었다. 밥을 먹어야 힘을 내서 육아를 할 텐데, 밥 먹을 시간이 나지 않았다. 미역국에 밥 말아 1분 안에 후루룩 마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늦깎이 엄마는 체력이 달렸다. 하루만이라도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다면 피로가 좀 풀릴 텐데, 단 몇 시간이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신랑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했다. 거의 매일 회식하고 들어온 신랑은 쓰러지듯 잠이 들어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출근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출근하는 신랑이 미웠고, 마음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매일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따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 혼자 독점하는 육아니 신랑 얼굴을 안 보면 미운 마음이라도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우울함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아이에게까지 뻗쳤다.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내 마음대로 밥을 못 먹고, 똥도 못 싸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핏덩이를 제대로 된 한 인간으로 키워내기 위해 엄마가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너무 컸다. 막막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일어날 현상에 대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없었다. 누구에게 내는지도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울하고, 화가 날수록 자존감은 낮아졌다.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집에 콕 박혀 아이만 보고 있으니 내 존재가 없어진 것 같아서 괴로웠다. 







마음속에 가득 찬 우울과 화의 화살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 탓을 하다 보니 자존감이 낮을 대로 낮아졌다. 점점 신랑에 대한 원망도 쌓였다. 신랑 탓을 하면 할수록 관계가 깨졌다. 결혼 6년 차에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사랑해서 같이 아이를 낳았는데, 왜 나 혼자 육아를 독점해야 해? 이대로는 못 살겠어!"

"살림이랑 육아는 당연히 네가 해야지. 난 밖에서 돈 벌잖아!"


우리는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상태라 상대방이 처한 상황은 보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름대로 밖에서 고생하는 신랑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더 깊은 우울의 구덩이에 빠지기 전에 나를 건져내야 했다. 자존감이 낮은 엄마가 키운 아이는 당연히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 내 아이를 마음 약한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이대로 살던, 이혼하던 어차피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하니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했다. 


신랑이 육아에 전혀 동참하지 않는 건 문제지만, 직업의 특성상 변화되기는 쉽지 않았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살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의 낙관적인 성격이 빛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매일 희망차게 보냈다. 다가올 내일이 기대되어 설렜다. 답답한 상황에서 만족감과 즐거움을 높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실천함으로써 불안과 우울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현실적으로 육아에 동참하기 어려운 신랑에 대한 헛된 희망을 품지 않고,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우울과 불안이 높은 사람은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생각보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괜찮아. 다시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라고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현실적인 낙관주의 생각이 나를 단단하게 해 주었다. 결국 내 삶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위대한 존재인 아들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