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 Nov 21. 2023

엄마의 용기 있는 선택, 제주도 한 달 살이

자존감 회복 여행



임신과 육아로 지친 2021년, 아이가 6살이 되었을 때, 나는 제주도 한달살이를 감행했다. 주거지를 나중에서 제주도로 옮기는 것일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신랑과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여기서나 저기서나 어차피 육아는 나 혼자의 몫이라 상관없었다. 


아이가 어려서 가지고 가야 할 물건이 많았다.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들도 챙겨야 했다. 킥보드, 모래놀이 세트, 아이 책상, 장난감, 몇 권의 책 등을 자동차에 가득 싣고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건너갔다. 아이와 단둘이 낯선 곳에서 한 달 동안 지내야 하는데, 나의 마음은 두려움보다 설렘으로 가득 찼다.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나를 직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으리라. 






제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전, 나는 몹시 지쳐있었다.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린 채, '아내'로 살아온 지 10년, '엄마'로 살아온 지 5년쯤 지나고 보니 헛헛한 마음을 채울 길이 없었다. 내 자리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나를 제대로 마주하고 싶었다. 


아이라고 다를 바는 아니었다. 기질이 예민한 아이는 첫 사회생활을 하는 어린이집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아이는 조금만 큰 소리가 들려도 무서워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활동적인 아이들이 많은 반에서 몹시 힘들어했다. 결국 등원 거부로 이어져 가정 보육을 한 지 꽤 된 상황이었다. 다시 등원하기 전에 아이에게도 마음을 토닥일 시간이 필요했다. 


제주도에서의 한 달 생활은 육지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지 도시의 삶에서 느끼지 못하는 시간적인 여유와 자연을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활력소가 된다. 낯선 곳에서 나를 바라보면 내가 평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용기 내서 집을 떠난 것이다. 






한 달 동안 지낸 제주의 집에서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나는 아이와 다음날 일정을 상의했다. 바다에 갈 것인지, 숲에 갈 것인지, 동물을 보러 갈 것인지, 도서관 혹은 박물관에 갈 것인지 등 목적지를 가장 먼저 정했다. 그 후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해 보았다. 입이 짧은 아이가 밖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어서 딱히 정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신나게 뛰어논 후 외식을 하거나 야외에서 간식을 먹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맛있으니까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모든 것을 계획에 딱 맞춰 생활하지는 않았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그림책 몇 권 보면서 뒹굴뒹굴한다. 그러다 날씨를 보고 그날의 일정을 확정하면 됐다. 비가 오는 날에는 걸어서 숙소 근처를 산책하거나 바닷가를 거닐었다. 구름이 약간 있는 날에는 노을을 보러 가거나 동물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제주에서의 일상은 환상 그 자체였다. 바삐 움직일 필요도 없었고, 조급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제주의 집 창문을 열어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렸다. 운전하고 가다 눈에만 넣기 아까운 멋진 풍경이 보이면 차를 멈춰, 적당한 곳에 주차한 후 아들과 손잡고 무작정 걸었다. 훗날 추억에 젖어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 아들을 품은 자연 사진을 되도록 많이 찍었다. 돈을 들이지 않아도, 특별히 무언가 하지 않아도 하루가 행복으로 벅찼다. 






처음 제주 한 달 살이를 계획했을 때, 특별한 목적이나 목표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늘, 바다, 구름, 나무 등 자연을 보고 느끼며 평화롭게 살다오고 싶었다. 그 덕에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아이도 자연의 일부로서 소중하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아까자는 마음도 들었다. 더불어 낮았던 자존감도 높아졌다.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 


현대인 중 고되지 않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자연을 벗 삼아 한 달 정도 살아보니 내가 얼마나 조바심을 내며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사는 삶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행복이 별건 아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다. 


엄마인 나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떠날 수 없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인내로 가득 찬 엄마의 삶도 살아내고 있고,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도 살아보았다. 나는 생각하는 모든 것을 도전해 볼 것이고, 현실로 이루어낼 것이다. 마음이 지친 엄마들에게 '긍정 에너지를 주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타 지역 한 달 살기를 추천한다. 







이전 18화 내 안의 가부장 들어내는 연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