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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Nov 24. 2023

새벽 기상과 철새의 이동

엄마로 살며 잃어버린 '나'




답답함에 숨이 턱 막혔다. 나를 위한 시간은 갖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이 꽤 길어지고 있다. 커리어를 쌓으며 돈을 버는 친구, 열심히 운동해서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지인, 매일 회식하는 신랑 등 나만 빼고 다들 잘 나가는 것 같다. 나는 돈도 없고, 몸매도 엉망이다. 게다가 인맥도 거의 사라졌다. 우울감과 함께 패배감이 밀려와 자존감이 낮아졌다. 나의 행복을 우선으로 살던 내가 남들과 비교하는 삶을 살게 되다니,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낮에는 아이를 돌봐야 하니 시간 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엄마 껌딱지인 아이는 엄마의 팔을 베고, 토닥여주어야 겨우 잠이 들었다. 수시로 깨서 엄마가 옆에 있는지 확인했다. 어쩔 수 없이 새벽기상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잠들기 전, 다음날 입고 나갈 옷을 챙겨 놓고,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놓았다. 나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지금이 아니면 나갈 수 없어.’ 자석에 이끌리듯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스름한 새벽을 더듬어 영산강 체육공원으로 갔다. 나보다 일찍 잠에서 깬 몇 명은 벌서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트랙에 왼 발을 올리고, 날짜와 시간이 박힌 사진을 찍는 것으로 나의 새벽 산책이 시작된다.


폐를 뚫을 것 같은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빨리 걷는다. 아니 그렇게 느낀다. 뒤룩뒤룩 살찐 허벅지와 엉덩이 때문에 내 생각만큼 잽싸게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래도 괜찮다. 새벽 공기를 맡으며 홀로 나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집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문득 하늘을 보니 북쪽으로 향하는 철새 무리가 보인다. ㅅ모양을 한 철새 무리는 일정한 속도로 날아간다. 맨 앞에서 무리를 이끌던 새가 속도를 늦춰 꽁지로 뒤쳐졌다. 끝에 있던 새는 꽁지로 간 새의 속도에 맞춰 느리게 날개 짓을 한다. 새 두 마리는 무리와 거리가 살짝 벌어졌다. 그 사이 앞에서 두 번째로 날아가던 새가 맨 앞으로 치고 나가 무리를 이끌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무리에서 떨어져 일정 거리를 두고 날던 새 두 마리는 다시 무리에 합류해 ㅅ모양을 완성했다.






새벽 기상을 시작한 첫날,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갖은 날에, 난 경이로운 광경을 봤다. 해가 미처 떠오르지 않아 어스름한 새벽녘, 목적지를 향해 서로 도우며 힘찬 날개 짓을 하는 철새의 무리는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그래! 나도 한때는 목표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했고, 타인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었지.’, ‘아내와 엄마로 사느라 ’나‘를 잃고 산지 너무 오래되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엄마인 나는 점점 우울해졌고, 자존감이 계속 낮아졌다. 나는 그 이유도 모른 체 그냥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저 아이가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쑥쑥 자라는 모습에 행복했다. 매일 아이의 성장이 신기하고 놀라워 감탄하느라 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아이에게 빠지면 빠질수록 나라는 사람은 점점 본모습을 잃어갔다.






철새 무리를 보면서 현재 나의 모습과 내 가정의 현실이 보였다. 누구 하나가 가정의 행복을 책임질 수는 없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행복해야 한다. 엄마의 희생만으로 가정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있을 없는 일이다. 내가 나에 대해 진지하게, 제대로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가 가족과 분리되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울한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 봐야 한다.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내면 아이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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