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바쁘게 사는 사람이다. 그런 신랑이 신혼 초부터 결혼 12년 차인 지금까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고깝게 들렸다. 신랑 도움 없이 혼자서 아이 키우고, 집안 건사하느라 심리적으로 고통 받으며 아등바등 살고 있는 나였기에 심사가 더 꼬였다.
"당신이 알아서 현명하게 잘하니 우리 가족에 관해서는 걱정할 일이 없어. 나만 밖에서 잘하면 될 것 같아. 안에서 든든하게 버텨주니 밖에서 일할 때도 힘이 나."
아이가 잠들고 둘이 맥주 한잔할 때, 신랑에 속엣말을 했다. 마음속에 켜켜이 쌓였던 앙금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속뜻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신랑의 말을 곡해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니 엄마인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슬슬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엄마도 직장에 다니려고 해.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럼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 나는 아직 아이라 어른의 도움이 필요해. 혼자 있으면 외롭단 말이야.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
초등학교 1학년 아들에게 '엄마의 직업 갖기'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자기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한다. 내심 아이를 잘 키운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임신하고 육아한 지 8년, 결혼한 지 12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내이자 엄마인 내가 우리 집안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흔들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 집의 정신적 지주는 엄마인 나다. 신랑과 아이가 밖에서 자기 일에 집중하고, 충실할 수 있는 이유는 집안에서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엄마가 집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어?'라고 하지만,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노는 엄마는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는 가족의 심리적 중심으로서 가족들이 밖에서 자기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하루 종일 애쓴다. 가족 구성원이 집 밖에서 다친 마음을 다독일 수 있도록 보듬고, 하루를 살아내느라 지친 몸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돕는다.
엄마는 가족 구성원들을 사랑하고 지지한다. 아빠와 아이의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족 모두의 정서적 요구를 이해할 수 있고, 스트레스나 감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가정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서로를 지지하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정서적 지주인 엄마가 아프면 가정이 흔들린다. 그동안 엄마도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가정의 중심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엄마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 온 가족의 자존감은 가적의 심리적 중심인 엄마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 흔들리는 상황이 와도 금방 제자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다. 그동안 가족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엄마가 중심을 잘 잡아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