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기는 워킹맘에게

by 장수연

워킹맘들은 아이를 낳고 회사에 복직할 때, 대리양육자를 누구로 할 지 결정해야 한다. 보통은 세 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있다. 친정엄마, 시어머니, 베이비시터. 내 경우 시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출퇴근하며 아이를 봐 주셨다. 어머님이 하율이를 키워주셨던 약 2년 간, 나와 남편은 미친듯이 싸웠다. 두어 번은 시어머님과도 언성을 높였다. (그 날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남편 생일에 시어머님과 싸우는 여자였다, 나는...ㅠㅠ) 여러모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 시어머님은 사정상 지방에 내려가 계신다. 우리 셋은 평화를 찾았고, 나는 뒤늦게 시어머님께 했던 내 행동이 후회스럽다. 서로 상처를 조금은 덜 주고받을 방법이 있었을 것 같아서이다. 그 때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시어머님의 무엇이 그렇게 싫었을까. 시어머님을 대리양육자로 삼아 회사생활을 하려는 워킹맘들에게 타산지석 삼으라고 적어보는 글이니 참고하시길.


내 시어머님은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두 아들을 번듯하게 키워낸 분이시다. 나는 그토록 생활력 강한 분을 본 적이 없다. 감자나 포도 같은 것들은 꼭 한 박스씩 사셨다. 이번 주에 먹을 만큼, 2-3개 정도씩만 사셨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사야 싸다며 꼭 박스로 사서 냉장고가 가득 차도록 꽉꽉 넣어두셨다. 나는 물건들에 라벨 붙여 칸칸이 수납하는 걸 좋아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정리 안 된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숨이 막혔다.

음식을 조금도 버리지 못하셨다. 아이가 이유식 먹다 세 숟갈 쯤 남긴 것도 냉동실에 넣어두셨는데, 그런다고 나중에 그것을 먹게 되지는 않았다. 버리는 걸 워낙에 아까워하시는 분이어서, 음식물 쓰레기는 늘 어머님 몰래 버렸다.

집안의 쓰레기를 검은 봉지에 담아 밖에서 버리시는 것도 싫었다. 화장실 휴지통에 있는 내 생리대 같은 내밀한 생활의 흔적들이 밖으로 옮겨지는 게 너무 찝찝했다. 집에 가실 때마다 쓰레기를 챙기시는 어머님을 보며 겉으로는 "안녕히 가세요" 했지만, 속으로는 "쓰레기봉투값 그거 얼마나 한다고...ㅠㅠ" 했다.

여기저기서 장난감을 얻어오시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것들은 대부분 짝이 안 맞거나, 낙서가 있거나, 구성품 중 일부가 부족했다. 넓지도 않은 집이 그런 장난감들로 어질러지는 게 참 싫었는데, 더 싫은 건 하율이가 그걸 잘 갖고 논다는 거였다. 그래서 어머님은 계속 어디선가 그런 걸 가져오셨다. 옷도 많이 얻어오셨다. 2-3년은 더 있어야 입힐 수 있는 크기였고, 그때가 된다 해도 내가 입힐 것 같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여기까지 읽은 많은 '시어머님'들은 속으로 그럴 것이다. '해줘도 지랄이네'. 맞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어머님은 최선을 다해 살림과 육아를 해 주셨다. 자기 살림처럼 알뜰하게 하셨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바로 그게 스트레스였다. '자기 살림처럼' 하시는 것.

며느리, 그것도 아이를 맡기는 입장인 주제에, 시어머님에게 살림 스타일이 어쩌고저쩌고 할 수는 없었다. 밤늦게 퇴근해 녹초가 된 몸으로 냉장고와 서랍을 정리했다. 그냥 좀 포기하고 지저분하게 살면 어떠냐 싶겠지만, 어쩌겠는가, 내 성질을 내가 못 이기겠는걸.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힘들었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가 남편에게 갔다. 시어머님한테 말하지 못한 것들을 남편에게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가 지저분하네, 세탁기를 한꺼번에 돌려서 옷이 망가졌네, 잡동사니가 하도 많아 집안이 엉망이네, 사오정 입에서 나방 나오듯 끝도 없이 말이 나왔다. 내가 얼마나 못 참는 인간인지 그 때 알았다. 나는 참은 게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뒀을 뿐이었다. 단 하나도 삼키지 못하고 고스란히 남편에게 뱉어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속에 가득 찬 불만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우리는 자주 싸웠다. 집안일을 하다가, 영화 보고 오는 차 안에서, 애 앞에서, 정말 시도때도 없이 싸웠다. 대로변에서도 싸워 봤다. 화해해 보자고 점심시간에 남편이 회사 앞으로 찾아와서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그래도 화해가 안 되었다. 결국 식당 앞 길바닥에서 둘이 소리소리를 질렀다. 대로변에서 악쓰고 싸우는 것, 연애 때는 그래도 추억입네 할 수 있지만 결혼하고 나니 그런 싸움 끝에는 상처만 남더라. 남편과 시어머님이 있는 집,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진 집, 일거리가 가득한 집으로 나는 정말 들어가기 싫었다. 그런데 절망스럽게도, 그 집에 내 아이가 있었다. 바람이라도 쐴 겸 영화나 보고 들어갈까, 누구와 술한잔 하고 들어갈까 싶어도 아이가 눈에 밟혔다. 마음은 외로웠고, 몸은 고단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베이비시터를 쓰자, 남편이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자기 엄마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아내는 불만에 가득차 있고, 부부 관계는 점점 나빠지고, 그도 참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번번이 반대한 건 나였다. 싫어 죽겠다고 잔뜩 써 놓고 정작 바꾸는 건 안된다니, 이 무슨 자아분열적이고 마조히즘적인 행태냐고? '그래도 아이에게 모르는 아줌마보다는 할머니가 낫지'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건 내 나름의 모성애였다. 나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살림과 육아 방식을 모성애로 참았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엄마한테 전화해 한참 시어머니 흉을 봤다. 이것도 저것도 다 마음에 안 드는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건 못 하겠다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 뭐 어쩌라고!'하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하소연이었다. 다 듣고 엄마가 그러셨다. "살림 잘 하는 베이비시터 쓰면 니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건 그거대로 '아이 안 보고 청소만 한 거 아닌가' 불안할 거야. 어차피 니가 키울 거 아니면 뭐 하나는 감수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덧붙이시는 말. "니 남편을 키우신 분이야. 니가 선택한 남자를 키운 게 그 엄마잖아. 니 딸도 잘 키우실 거야."

결과적으로 엄마 말이 맞았다. 육아휴직을 하고 하율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회사에 살다시피 한 시간 동안 하율이는 할머니 손에서 참 밝게 자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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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여기까지 써 놓고 며칠 동안 이 글의 마무리를 못 지었다. 어떻게 결론을 내야 할지 모르겠다. 시어머님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은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시어머님의 싫었던 부분을 받아들이게 됐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어머님은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쓰레기가 든 봉지를 들고 가시는데, 난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다. 아마 지금 이정도나마 시어머님과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우리가 물리적으로 좀 떨어져 지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얼마 전 남편의 일기를 보았다. (내 오래된 취미 중 하나이다.)

'내 엄마는 시어머니. 나를 살게 한 내 어머니를 아내는 싫어한다'.

이 두 문장이 전부였다. 사실을 적시했을 뿐, 감정의 토로나 해결책에 대한 고민은 없는 그 짧은 일기를 보며, 마음이 참 아팠다. 남편의 포기가 느껴졌다. 남편이 불쌍했고, 시어머님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제일 불쌍한 건 나라고 생각한다. -_-)

여성학자 박혜란 선생님은 <결혼해도 괜찮아>라는 책에서 남편을 일컬어 '결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평생 그리워했을 사람'이라고 쓰셨다. 나는 시어머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부사이로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존경할 수도 있었을 여성이다.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하려면 시어머님과 가족이 되겠다는 결심이 동반돼야 한다. 사실 요즘 세상에 시어머님과 며느리, 쿨하려면 얼마든지 쿨한 관계로 유지할 수 있다. 예의바르게, 용돈 보내드리면서, 서로 크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그런데 '육아'라는 과업을 함께 수행하면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자기 주장 강한 예순 살 여자와 되바라진 서른 살 여자가 만나 가족이 되는 건, 스물 몇 살 또래 남녀가 만나 가족이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나는 그걸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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