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기 - 치질에 대하여

부끄럽지만 누군가는 궁금해 할 것이기에!

by 장수연

제목 그대로이다. 꺼내놓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궁금해 할 임산부들이 많을 것 같아, 용기내어 경험담을 적어 본다.

출산 중 산모가 겪게 되는 3대 굴욕으로 흔히 관장, 제모, 내진을 꼽는다. 그 중에서도 나는 관장에 대한 공포가 있었는데, 어디선가 '관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분만 중에 대변을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출산을 앞두고 선배 언니에게 "언니, 애 낳다가 똥도 나온다며?"라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그 언니가 시원스레 일갈했다. "야, 똥만 나오냐? 똥꼬도 나와."

진짜였다. 나는 하율이를 낳으면서 치질을 얻었다.

출산 후 산부인과 진찰을 받으며 치질이 생겼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병원을 찾기엔 뭔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무지했고, 게을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통증이 찾아왔다.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집 근처 항문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다그쳤다. "환자분,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냥 놔뒀어요? 이 정도면 설명할 필요도 없어요, 바로 그냥 수술 해야해요. 어떻게 자기 몸을 이렇게 방치합니까?" 진료실이 아니라 고등학교 교실에 있는 듯했다. 학주도 울고갈 독설을 내뱉는 의사 앞에서 나는 주눅든 채 수술 날짜를 예약했다. 뒤늦게 수술 후기들을 폭풍검색해 보았더니 하나같이 '엄청난 고통 끝에 천국이 도래한다'고들 했다. 아프다고... 아프단 말이지... 거기가 그렇게 아플 거란 얘기지... 나는 수술 잘 한다는 병원과 의사를 추가 검색한 후, 기존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두번째 의사는 첫번째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타입이었다. 이미 한차례 진찰을 받으며 '치질 있는 몹쓸 몸뚱아리'를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는 내게 그 의사는 마치 사마리아 여인 앞의 예수처럼 다가왔다.

"치질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거에요.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체질적으로 치질에 잘 걸리는 사람도 있고요. 게다가 출산까지 하셨으면 뭐, 충분히 생길 수 있죠. 치질 수술은 아주 흔해요. 우리나라에서 수술 항목 1위가 치질이거든요."

영화 <굿 윌 헌팅>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It's not your 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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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거라. 누구든지 직립보행하지 않는 자가 이 치질환자를 돌로 치라. 그렇습니다 선생님, 저는 그저 두 발로 걸었을 뿐입니다. 아, 애도 낳았군요.

나는 그렇게 죄책감에서 벗어났고 용기를 내어 치질 수술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수술날짜 받아놓고 기다리는 와중에 덕컬 임신을 해버렸다. 첫 출산의 치질이 아물기도 전에 둘째 임신이라니, 의사의 지나친 격려는 환자의 정신줄을 놓게 하는 걸까. 어쨌든 내 수술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2년여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큰 불편은 없다. 치질을 안고 출산을 치러낸 경험자로서, 내가 금과옥조로 여기며 지켰던 의사의 조언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하루에 한두 번씩 꾸준히 좌욕을 하세요. 통증이 있을 땐 연고를 바르시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변볼 때 무조건 5분 안에 끊는거에요. 목표했던 변이 나오면 바로 정리하셔야해요. 알겠죠?"


모유수유가 끝나고 언젠가 치질 수술을 받게 되면, 다시 후기 올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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