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상암동이다. MBC가 상암동으로 이전한 이후 근처로 이사온 동료들이 많은데,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방송국들이 속속 상암동으로 이사오고 주변 상권이 발달하면서, 이 일대 아파트 전세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하긴 서울의 어느 지역이 안 그럴까마는.) 아이를 회사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회사 동료들이 눈물을 머금고 비싼 전세 올려주며 상암동에 붙어 있다. 그나마 재계약에 성공하면 다행이다. 집주인들이 월세로 돌리고 싶어 해서, 전세를 찾아 같은 아파트 다른 집으로 ‘의미 없는 이사’를 한 지인도 많다. 세입자라면 알 것이다. 이사비용 들여가며 걸어서 10분 거리로 이사해야 하는 쓰린 마음을. 하율이의 같은 반 친구네 한 집은 아예 집을 샀다고 한다. 그 엄마 역시 집주인이 월세를 달래서 고민 끝에 결정했단다. 그래도 자금 여유가 있나보다 내심 부러워하고 있는데, 그녀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상암동에 집을 샀다고 하니까 회사 상사 중 한 분이 그러더란다.
“집을 샀다고? 미쳤구나? 애 교육은 포기한거니? 강남은 못 가도 목동은 가야지!”
강남은 못 가도 목동은 가야지.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그만큼 정곡을 찌른 표현이 또 있을까 싶었다. 하율이 친구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 ‘장기적으로는 이사 가야지’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야 어찌어찌 보내더라도 결국엔 교육환경이 좋다는 동네로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 대치동, 아니면 잠실이나 반포, 아니면 목동, 중학교 때까지는 일산도 좋다던데, 블라블라. 상암동에 위치한 회사에 다니다보니 대부분은 그나마 가까운 목동으로 귀결된다. ‘강북의 대치동’ 같은 느낌이다.
‘목동’ 하면 떠오르는 기억 하나. 광화문 근처에 있는 영국문화원에 영어 수업을 받으러 다닐 때 같은 클래스에 50대 여성 한 분이 계셨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아들 둘을 대학에 보내고 이제 내 인생을 찾고 싶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아이 리브 인 목동’ 할 때 그녀의 표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목동에서 아들 둘 키워 이름난 대학에 보낸 그녀의 자부심, ‘다 이룬’ 중년 여성의 여유가 ‘모옥도옹’ 하는 그녀의 모아진 입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녀가 ‘아이 리브 인 목동’ 할 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문화원이 강남 어느 지역에 있었다면 물론 다른 동네 이름이 나왔겠지.
아이들 교육에 관해 엄마들 사이에 도는 흉흉한 소문은 한두 개가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적이 대학을 결정한다더라, 어느 동네 아이들은 줄넘기 과외까지 받는다더라, 어느 지역 고등학교에 가면 전교 1등도 ‘인 서울’ 대학에 겨우 진학한다더라.... 그런 불안감이 결국 강남, 결국 목동, 결국 어느어느 동네로 이사하게 하는 듯하다. 녹물이 나오는 30년 된 아파트여도,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주차난에 고생해도, 부모 출퇴근이 1-2시간씩 걸려도, 결국 애들 교육 생각하면 어느어느 동네.
다른 사람 얘기하듯 이렇게 쓰고 있는 나도 내 아이가 본격적인 대입 전선에 뛰어든다면 어떻게 할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이미 ‘목동은 가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쪽으로 마음이 휘청휘청 한다. 상암 아파트 전세도 겨우 감당하는 주제에, 여기에 몇 억은 더 얹어줘야 하는 지역으로의 이사를 고려하며 이미 머릿속으로 대출을 어디서 어떻게 땡겨야 할지 계산하고 있다.
이사가야 한다는 조바심, 아이들 교육에 관해 폭주하는 불안감을 잠재우는 건 남편의 일상을 보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