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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Jul 20. 2016

강남은 못 가도 목동은 가야 할까 (2)

  이사가야 한다는 조바심, 아이들 교육에 관해 폭주하는 불안감을 잠재우는 건 남편의 일상을 보면서이다. 내 남편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해 꽤 높은 연봉을 주는 금융권 회사에 다닌다. 교육을 위해 어느어느 동네로 이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녀의 예상 노선’일지 모른다. 우리 부부의 연소득을 합치면 억대가 된다. 하지만 나와 내 남편은 우리 아이들이 커서 우리같은 생활을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괴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재수없는 소리일텐데,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나 대신 아주 훌륭하게 설명해 준 글을 만났다. 지큐코리아 정우성 에디터가 쓴 <문득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라는 글이다. 

(링크 http://www.gqkorea.co.kr/2014/03/25/문득-한국을-떠나고-싶은-마음에-대하여/?ddw=4823&ds_ch=facebook&utm_source=facebook&utm_medium=SNS&utm_campaign=문득,%20한국을%20떠나고%20싶은%20마음에%20대하여 )


 남편은 7시30분 쯤 집을 나서서 빠르면 9시, 늦으면 다음날 새벽 1-2시에 돌아온다. 오늘 출근해서 내일 퇴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 딸의 얼굴은 영상통화로 본다. 아이가 첫니가 났다는 것도, 기기 시작했다는 것도 베이비시터 이모님한테 전해들었다. 남편 회사의 어느 ‘빡쎈’ 부서에서 직원들이 자꾸 사표를 내자, 회사에서는 그 부서에 ‘자식 있는 기혼 남성’들만 배치하기로 했다. 절대 그만들 수 없는 사람들만 보내는 것, 그게 한국 기업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언제 과로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상이지만 그냥 굴러가고 있다. 이직? 옮겨 봐야 다른 회사 사정도 비슷하다. 나는 각기 다른 회사에서 이런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을 백 명쯤 알고 있다. 흔히 ‘사축’이라고 표현하더라. 회사의 노예, 회사의 가축.   


 대출 땡겨서 목동이나 강남 어디로 이사 갔다고 치자. 무지막지한 수능 레이스에서 성공하여 ‘인서울’ 대학교에 입성했다고 치자. 졸업하여 결국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내 자식도 우리처럼 살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끔찍하다. 정우성 에디터의 글처럼 '거대한 악보의 끝에,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살기 위해 그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는가, 목적이 이것인가, 이 생각이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망설이게 한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나. 그나마 괜찮은 대학 나와서 정규직 취업에 성공 했으니 서울에 아파트 전세라도 얻어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게 사실이라서 너무 비참함을 느낀다. 언젠가 건국대 하지현 교수님이 강의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왜 우리 나라 부모들이 자식들의 교육에 목을 매는가. 자식들이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의 몇 안 남은 빈 자리에 태우는 심정으로 자식을 학원에 보낸다. 이건 ‘더 나은 삶’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키워야 할까. 내 자식은 이 헬조선에서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목동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이 질문과 만난다. 그리고 이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같은 말이다. 내 자식이 어떤 사람이길 원하는가는 나는 어떤 사람이길 원하는가와 다른 말이 아니다. 


(여기까지 썼는데 하율이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네요. 글은 하염없이 길어지고, 하원시간은 꼬박꼬박 돌아옵니다. 다음에 이어서 쓸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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