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열한 살이 된다면...
하루에 예닐곱 번 버스가 들어와 읍내로 나가는 할머니들과 그네들의 짐보따리(주로 나물들)를 옮겨주던 곳. 피아노학원엘 가기 위해 15분 쯤 버스를 타거나, 25분 쯤 자전거를 타거나, 40분 쯤 걸어야 했던 곳. '엄마 쟤 흙먹어'가 농담이 아니라 레알 일상이었던 곳. 거기에서 열여덟 해를 자랐다. 한 학년에 스무 명 남짓, 전교생은 130명 안팎. 전교생이 100명 이하로 떨어져 우리 학교가 분교가 되느냐 마느냐, 그것이 우리 초등학교를 둘러싼 모두의 걱정이었다. (지금은 분교가 되었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부분 농부였고, 부모가 농부가 아닌 소수의 아이들에게는 묘한 자부심이 있었다. 비(非)농부였다가 농부가 된 아빠의 직업이 나는 못마땅했다. 공부를 잘 하고, 피아노를 칠 줄 알고, 양옥집(!)에 사는 나의 신분에 비추어 아빠가 농부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아쉬운대로, 어렸을 때 도시에 살다가 지금 동네로 이사온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꽤 오래 유지한 거짓말이었다.
한글 맞춤법을 틀리는 채로 학교를 졸업하기도 하는 시골 아이들 사이에서, 군에서 열리는 글짓기 대회에서 곧잘 상을 타 왔던 나를 선생님들은 매우 예뻐하셨다. 이따금씩 누가 전학올 때마다 조금 긴장했지만 다행히 공부 잘 하는 전학생은 없었고, 그마저도 금세 다시 전학을 갔다. 도시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온 그 애들의 아빠들은 밭일보단 공장일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다른 유형의 전학생이 등장했다. 영화 <우리들>처럼, 딱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하얀 얼굴에서 '도시 포스'를 팍팍 풍기는 아이였고, 피아노는 못 쳤지만 그림을 무척 잘 그렸다. 그 아이의 아빠는 공장일보다 농사일이 낫다고 판단했는지 집을 고치고 화장실을 수리하더니, 마을 이장이던 우리 아빠와 자주 술을 마셨다.
나는 '보라'가 되었다. 그 애와 놀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 애와 말 섞지 말 것을 종용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그 친구의 엄마가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갔더니 고소하고 달큰한 이런저런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고, 그날 하루는 그 친구와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다시 그 친구를 따돌렸다. 다시 며칠이 지났고, 이번에는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너 왜 00이랑 안 노니. 그러지 말아라. 사이좋게 지내야지"
교무실에 다녀온 뒤 나는 친구들에게 '00이가 선생님한테 일러바쳤다'고 말했고, 더 악랄한 따돌림을 감행했다. 영화에서도 나온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른들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이듬해, 학년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 친구는 우리 동네에 살지 않는 다른 여자애들과 어울리며 세를 불리더니,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선이'로 전락했다. 공부를 잘 하는 것, 선생님한테 예쁨받는 것, 조회 시간에 앞에 나가 상을 받는 것이 내가 재수없는 이유가 됐다. 반장이어서 앞에 나가 학급회의를 진행할 때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서 혼자 벌서듯 서 있었다. 그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나를 쳐다보며 눈으로 말했다. 내 솜씨 어때.
그렇게 번갈아 따돌림을 주고받는 새 초등학교 시절이 끝났다. 중학교에 갔더니 한 반에 45명씩 다섯 반이나 되었고, 그 친구나 나나 그 많은 아이들을 휘어잡을만한 능력은 안 되었기에 각자 자기 무리의 친구들 속에서 평범하게 사춘기를 보냈다.
왕따에 얽힌 이런 기억을 나는 오랫동안 부끄러워했다. 꽤 커서까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따돌림 당했던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자동으로 소환되었다.
십대 초반 나를 지배했던 감정이 '난감함'이었다는 걸 영화를 보며 떠올렸다. 훔친 색연필을 바라보는 선이처럼, 혹은 영국에 가본 적 없는 지아가 거짓말을 들켰을 때처럼 나는 자주 난감했다. 고독감, 외로움,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공포, 누구에게 물어봐야할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뭉텅이로 날 덮쳤는데, 지금은 이렇게 명명하는 그런 감정들을 당시에는 뭐라고 부르는지도 몰랐다. 하여 다시, 난감했다. 선생님에게 제출하는 용도가 아닌 나 혼자 보고 마는 일기를 처음 따로 쓰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었다. 자물쇠가 달린 하드커버의 도톰한 일기장. 버리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 <우리들>이 보여준 적나라한 열한 살의 표정.
적의와 호의를 감출 줄 모르는 순진무구한 난폭함.
어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원시 버전.
보라처럼 못되게 굴기도 했고, 선이처럼 찌질하기도 했고, 지아처럼 물건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한 적도 있던 열한 살의 나.
지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거기서 고작 한두 걸음 걸어나왔을 뿐임을 영화는 깨닫게 한다. 나는 여전히 보라이자 선이이고 지아이다.
내 딸들도 언젠가 이런 권력다툼을 겪게 되겠지. 공부 따위보다 훨씬 중요했던, 열한 살 인생의 전부였던 친구 전쟁. 그 때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한살 때 내가 얼마나 진지했었는지를 기억하는 것 뿐이리라.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른들은 거의 도움이 안 되니까.
아이들 눈높이에서 촬영하느라 어른들 얼굴은 코 윗부분이 짤리기 일쑤인 이 사랑스러운 영화를 보며, 언젠가 내 딸들의 시야에서 내가 사라졌을 때 유념해야 할 행동 지침을 생각했다. 동생 맡기지 말아야지. '요새 무슨 일 있어?' 묻지 말아야지. 학원 다니고 싶달 때 보내주고, 싫달 때 억지로 보내지 말아야지.
봉숭아 꽃물 들이느라 손가락에 실 묶고 잠들었던 밤처럼,
영화가 끝난 한참 뒤까지 이렇게 알싸한 통증이 남는다.
참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