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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Aug 11. 2016

글 쓰기와 똥 싸기

(육아 에세이 아닙니다)

최근 쓴 몇몇 글을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셨습니다. 

여러 통로로 다양한 반응을 접했습니다. 

애초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관해 

동시대 다른 엄마아빠, 혹은 예비 엄마아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동기였으니, 

동의든 반박이든 생각 나눠 주시는 많은 분들께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쯤 해서,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는 게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번쯤 정리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예전에 썼듯이 저는 치질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대변을 보는 것에 많은 신경을 쓰죠.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거사를 마무리하는 데 집중합니다.

어느날 문득, 저에게 글 쓰기가 똥 싸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이나 영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등등을 통해 머릿속에 이런저런 정보/자료/느낌들이 들어옵니다. 먹는 거죠. 

그리고 일상을 삽니다. 소화구요. 

이걸 글로 풀어냅니다. 싸는 거에요.


한창 바쁘게 살 때 저는 '글 쓸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읽고, 보고, 듣고, 느낀 많은 것들이 내 안에 들어오는데 그걸 내보내지 못하고 쌓아만 두니

늘 더부룩하고, 답답하고, 뭔가 막혀 있는 듯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글 쓸 시간이 없다'는 건 '똥 쌀 시간이 없다'는 것만큼이나 바보같은 말입니다. 

살면서 받아들이는 것, 느끼는 것들을 

내 것으로 소화시켜서

정리된 형태(제 경우는 글이겠죠)로 내놓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영혼의 소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살기만 하고 먹기(읽기)를 안 하면 소화시킬 게 없어 영혼이 말라갑니다. 

먹고 살기만 하고 쓰기를 안 하면 정리하지 않은 생각들이 내면에 쌓여 지저분해집니다. 

먹기와 살기에 소홀한 채 쓰기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빈곤한 글을 내 놓는지는 

세상에 넘쳐나는 쓰레기같은 글들이 증명해 주고 있고요. 

아무리 바빠도 셋 다 적절히 해 줘야 합니다.


전업 작가가 아닌 이상, 일상이 바빠지면 제일 먼저 생략되는 건 '배출'의 과정이죠. 

'먹기'야 독서가 아니더라도 영화나 인터넷 등등으로 어떻게든 들어오니까요.

저 역시 한동안 '먹기'만 했었습니다.

사실 육아휴직으로 가장 좋은 건 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마음이 많이 가뿐해지는 걸 느낍니다. 


'좋은 글'이 뭘까 생각해 봅니다. 

들춰보고 싶지 않은 기억,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 너무 부끄러워 들키고 싶지 않은 그 부분, 

그것을 글로 썼을 때 글쓰기의 신비로운 작용 '치유'를 경험합니다. 

치질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영화 <우리들>을 보고 왕따에 관한 기억을 털어놓았을 때, 

'목동'으로 대변되는 내 욕망이나 시어머니께 버르장머리없이 굴었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해 글로 썼을 때, 

저의 내면이 정리되어감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느냐는

나를 얼마나 꺼내놓을 수 있느냐와 같은 말인 것 같습니다.   

 

바빠지더라도 종종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정직하게 나를 들여다본 후 길어올린 이야기들로 

스스로를 (가능하면 읽으시는 분들까지) 건강하게 가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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