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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Feb 09. 2017

나는 왜 이럴까?

요 며칠,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나는 왜 이럴까.’이다. 


나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나는 왜 방금 전에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 말을 이미 말하고 있을까. 내가 망한다면 뭘로 망할까 생각해 봤는데, 결론은 분명하다. 난 말로 망할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호들갑을 잘 떨까. 이야기하고 보면 사실 별 것 아니어서 머쓱해지면서.

나는 왜 이렇게 흥분을 잘 할까. 없어보이게.

나는 왜 이렇게 감정적일까. 화내지 않고 조근조근 차분히 말하고 싶다. 제발. 


나는 왜 이렇게 집중력이 약할까. 편집하다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왜 좀 더 버티지 못하고 바로 페북을 열고 딴짓을 할까. 그러다 시간이 휙 지나 결국 허둥댈 거면서. 

나는 왜 내 단점을 알면서 고치질 못할까. “수연아, 너는 흥분하지만 않으면 돼”라는 애정어린 충고를 선배에게 듣고 감동했던 게 벌써 몇 년 전인데, 그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내 모습에 스스로 지긋지긋하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관심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 덥석 하겠다고 해 놓고, 닥치고 나서야 깨닫는다. 내 능력을 상회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어야 하는 일이었음을. 철회하기 쪽팔려 꾸역꾸역 하게 될 것이고, 내 경솔함을 후회하겠지. 


나는 왜 이렇게 거짓말을 잘 할까. 게다가 대부분의 거짓말은 잘난척이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운동 시작해야지, 다짐한 게 언제냔 말이다. 영어 공부 하겠다는 결심만 몇 번째냔 말이다. 

나는 왜 나이를 서른 다섯이나 먹고도, 입사 9년차가 되고도, 애를 둘이나 낳고도, ‘나는 왜 이럴까’라는 쓸데 없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 할까. 


요즘 하율이에게 자주 하는 말. 

왜 엄마가 한 번 말하면 안 듣니. 

엄마가 아까부터 양말 신으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안 신었니. 

만화는 두 개만 보기로 약속했는데 왜 징징대니. 두 개 보기로 했으면 두 개 끝나고 딱 꺼야지. 


이렇게 말하는 순간의 나는 진심으로 짜증이 나 있다. 

하율이의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짜증을 못 이겨 하는 말이다. 


내 못나고 한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과연 하율이에게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나 싶다.

내 삶은 하율이보다 훨씬 엉망이지만, 

하율이는 여섯 살이고 나는 서른 다섯 살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하율이에게 "너도 니가 니 마음대로 안 되지? 엄마도 그래"라고 말하는 게 옳다. 

너는 왜 그러느냐고 답답하다는 듯이 말할 게 아니라. 


사실 제일 답답한 건 나잖은가. 

나는 대체 왜 이럴까, 이 말이 지금도 사무치게 올라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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