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쓰라의 야간개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연출하고 있다. 새벽 2시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인데, 에픽하이의 래퍼 미쓰라 씨가 진행하고, 선곡되는 음악들은 주로 힙합, 혹은 힙합이 아니더라도 ‘힙’한 음악들, 초대석에는 힙합 뮤지션들이 출연한다. (여기까지는 프로그램 홍보이다.) 심야 음악프로그램이어서인지, 10-20대 젊은 친구들의 고민 사연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얼마 전에는 이런 사연이 왔다. “제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자꾸 의심이 됩니다.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할까요.”
이 질문에 미쓰라 씨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지금도 하는 고민이에요. 이 길이 맞을까, 계속 가도 되나, 이게 내가 계속 해도 되는 일인가.... 하지만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고, 자기 의지로 선택한 길이라면, 어느 기간까지는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능 넘치는 사람? 그거야 어느 분야에든 많죠. 그거 의식하면 아무 것도 못 해요. 그냥, ‘저 사람은 저렇네. 좋겠다’ 하고 넘겨야 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제 와서 다른 길을 찾기에는, 너무 멀리 왔어요. 새로운 걸 찾는 것 보단, 제가 지금까지 해 온 길을 가는 게 더 나아요. 가다 보면, 무언가 있겠죠. 그게 뭔진 저도 잘 몰라요. 뭔지 모를 무언가를 상상하면서, 00님도 저도, 그냥 가는 거에요. 그게 삶 아니겠어요?”
에픽하이는 데뷔한 지 14년이 넘었고, 미쓰라 씨가 음악을 시작한 건 그보다 2-3년 더 되었다. 정규 앨범만 8장을 냈고, 히트곡도 많다. 세 보진 않았지만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 수가 200곡이 넘을 거라고 했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이라서, 무게가 달랐다. 이 길이 맞을까, 지금도 고민합니다. 저 너머에 있는 게 뭘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가는 겁니다. 계속 나아가는 겁니다. 그게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연예인인데 저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 싶을 만큼, 속마음을 까뒤집어 보여준 대답이었다. (우리 DJ가 이렇습니다 여러분. 새벽 2시 MBC FM4U, <야간개장>입니다.)
미쓰라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살면서 했던 가장 큰 선택, 결혼에 대해 생각했다. 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은 언젠가 책으로 묶여 나올 것이다. 아마 그 책은 ‘육아’ 서적으로 분류되겠지. 그래서 꼭 써야 겠다고 생각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가끔 내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 결혼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결혼은 하되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도 가끔은 상상한다. 다른 행복과 다른 고통을 감당하면서 살아갔겠지. 그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행복/고통보다 더 나은 건지 어떤 건지, 그런 비교는 무의미하다. 내 동생을 비롯한 가까운 친구들 중 많은 수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친구도 꽤 된다.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이 길이 맞는지, 내가 좋은 선택을 한 건지, 계속 가면 뭐가 있는 건지, 나는 잘 모른다. 그건 비혼이나 비출산(이라는 말이 있는진 모르겠지만)을 선택한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걸 감당할지 저걸 감당할지, 이 행복을 누릴지 저 행복을 누릴지, 그저 결정할 뿐이다.
오늘 하율이에게 먹일 돈까스를 만들다가 기름이 발등에 튀었다. 놀랐고, 아팠다. 최근 2주 정도, 나와 남편이 회사에서 동시에 바쁜 기간이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상태였다. 어젯밤에는 둘 다 예민해져서 부부싸움 직전까지 갔다. 이 와중에 애 밥 먹이겠다고 돈까스 튀기는데 화상까지 입다니, 대체 세상이 나한테 왜 이러나 싶은게 와락 신경질이 났다. 그러다 문득, 몇년 전 같이 일 하던 작가(당시엔 싱글이었고,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되었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취방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깻잎을 젓가락으로 집었는데 그걸 잡아 줄 사람이 없는게 그렇게 서럽더란다. 깻잎 두 장 붙은 걸 집어 올리며 울거나, 돈까스 튀기다가 울거나, 인생은 어차피 눈물바다인 것 아닐까.
나는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 당신을 응원한다. 지지한다. 그 선택에 따르는 행복을 충만하게 누리길 기원한다.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며 결혼을 해서 아이 둘을 낳고 사는, 당신들의 부모님이 이야기할 그 ‘멀쩡한 여자’가 하는 말이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듯 아이는 행복의 증명이 아니고, 당신이 선택에 따르는 무게를 감당하는 딱 그 만큼 나 역시 내 선택의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다고. 내가 이 블로그에 ‘아이 낳아 기르는 행복’을 늘어놓듯이, 비혼의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 역시 그만의 행복을 나열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내 글들이 ‘결혼과 출산이 정상적인 삶’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공고화하는 데 일조하는 걸 결코 바라지 않는다. 내 남편은 집안일에 절반 이상 참여하는 합리적인 남자이고, 육아에도 적극적이다. 시댁 스트레스도 없는 편이다.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내 인생에 이렇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존재들이 너무 부담스러워, 결혼하지 않은 내 인생은 어땠을까 상상하며 울컥한다. 아마 결혼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도 나처럼 가끔 행복하고, 가끔 후회하며, 그래도 각자의 삶을 앞으로 밀고 나가게 될 것이다. 당신이 삶이 버거운 어떤 순간을 만날 때, ‘내가 결혼을 안 해서 이런가?’, ‘내가 아이를 안 낳아서 그런가?’하는 생각은 안 했으면 한다. 나도 ‘내가 아이 때문에 이렇게 힘든가’하는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 우리 모두, 삶이 주는 버거움을 잘 감당해 보자. 깻잎이든 돈까스든, 선택한 걸 맛있게 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