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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Mar 18. 2017

4살 메리언의 안경

 부산대학교 로버트 켈리 교수의 BBC 인터뷰 영상.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4살 메리언의 천진한 어깨춤, 우당탕 들어오는 엄마 김정아 씨의 다급한 몸짓, 눈을 지그시 감으며 슬쩍 웃는 켈리 교수의 표정(‘아, 이 못 말리는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속마음이 들리는 듯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부산대학교에서 있었다는 공식 인터뷰 동영상도 챙겨 보았다. 막대사탕을 물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메리언의 위풍당당함이라니, 방 안에서 자신을 끌어내려는 엄마에게 “엄마, 왜 그래~!!”하고 묻던 그 소녀가 맞았다. 켈리 교수 부부의 말도, 아이들의 귀여움도 인상적이었지만, 내겐 또 하나 시선을 사로잡은 게 있었다. 메리언이 쓰고 있던 안경이었다.... 4살 메리언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내 딸 하율이도 얼마 전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하율이는 올해 6살이다. 처음 '하율이에게 안과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작년 영유아건강검진 때였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시력이 좀 안 좋은 편이니 검사를 받아 보시라'고 말했지만, 나와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원래 신생아 때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다가 자라면서 점점 시력이 좋아지는 걸로 알고 있었고, 나는 막연하게 하율이의 시력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했다. 시력이 좋아지는 과정이 얼마 동안 진행되는 건지, 몇 살 정도에 시력이 완성되는 건지 정확히 몰랐던 것이다. (신생아일 때는 그토록 육아 서적을 뒤적이며 지식을 쌓았었는데, 아이가 자랄수록 이렇게 무지해져갔다.) 안과에 가 보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지만 결국 다음 영유아검진 시기가 될 때 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이유야 뭐, 뻔하지 않겠는가. 바빴다.


 그리고 올 해 검진 때, 의사가 시력 검사를 정밀하게 받아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이번엔 좀 더 강하게 이야기했다, 고 시어머니가 전해주셨다. 나와 남편이 모두 바빠서, 시어머님이 하율이 건강검진을 데려가셨던 것이다. 시어머님은 그날 바로 안과에 데려가셨고, 의사로부터 아이의 난시가 심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제야 나와 남편은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했다. 그 주 토요일, 내가 집에서 둘째를 돌보는 동안 남편이 하율이와 병원에 다녀 왔다. 남편이 전해준 의사의 말은 이랬다. '하율이는 난시가 심하다. 시력 교정용 안경을 써야 한다. 보통 만 6세 정도면 시력 형성이 완성되기 때문에 3-4세 정도에 안과 검사를 받고, 만약 이상이 있다면 6세 이전에 교정을 해야 한다. 하율이는 늦었다. 왜 진작 안과에 데려오지 않았느냐.'


나와 남편 모두 충격을 받았다. 특히 남편이 무척이나 마음 아파 했다. 기회가 있었는데, 5살 건강검진 때 안과 검진 소견을 이미 들었는데, "우리가 실기(失期)했다"고 표현하며 하율이에게 미안해 했다. 우린 뭘 하고 살고 있는 걸까, 대체 하율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정말 마음이 무거웠다.  


비슷한 시기에 이런 일도 있었다. 둘째 하린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제출해야 할 서류 중 영유아건강검진결과표가 있었다. 최근 한두 번, 건강검진 시기를 놓쳤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장 선생님한테 '예전 서류를 제출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그렇게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서류를 뽑으려 '건강in'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을 했는데.... 세상에.... 하린이가 그동안 영유아건강검진을 받았던 기록이 하나도 없었다! '한두 번 시기를 놓친것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한두 번이 하린이가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 횟수의 전부였던 것이다. 심장이 철렁 했다. '서류 미비로 어린이집 입학 취소되나?' 불안해서 원장님께 여쭤보러 갔는데.... "하린이가 그동안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았더라구요..."라고 말하려니, 얼굴이 화끈거려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너무 부끄러웠다. '대체 뭐 하는 부모들인가'싶을 것 같았다. (다행히 입학이 취소되진 않았다. 1만원을 내면, 검진 시기가 아니어도 받을 수 있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남편은 진지하게 '퇴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사실 남편이 휴직, 이직, 퇴직을 고민한 건 꽤 오래된 이야기이다. 여러 번 망설였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 그만 둘까? 옮겨 볼까? -> 결심을 굳힐 때 쯤 바쁜 시즌이 끝나 퇴근이 조금 빨라지거나, 혹은 보너스가 들어온다 -> 그래도 이만큼 월급 주는 회사도 드물지, 옮겨 봐야 다른 데도 퇴근 시간은 비슷하지 않겠어? -> 일단은 그냥 좀 다녀 보자 -> 다시 바쁜 시즌이 돌아온다 -> 이렇게는 못 살겠다, 돈 좀 덜 받아도 일찍 끝나는 데로 옮기자 -> 그럼 어디 한 번 알아볼까? -> 여기저기 알아보며 고민하는 사이 월급이 들어온다...... 무한반복이다. 이러는 사이 아이들은 자랐고, 하율이의 시력은 완성되었고, 우리는 기회를 놓쳤다.


켈리 교수 가족의 인터뷰를 보며 생각했다. 메리언은 4살이라는데, 벌써 안경을 썼네. 메리언도 난시일까? 그래도 4살 때 부터 안경을 쓰고 있으니 곧 교정이 되겠구나. 메리언은 제 때 안과 검사를 받았나보다. 켈리 교수나 김정아 씨는 나나 내 남편처럼 늦게까지 일하지는 않겠지?...... 켈리 교수 가족이 더 행복해 보이고 여유있어 보였던 건 그래서였던 것 같다. 메리언이 평소 자유롭게 아빠의 서재에 드나든다거나 켈리 부부가 이 일로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꾸짖지 않았다는 인터뷰도, '그래, 노동 시간이 우리처럼 길지 않으니까 저런 마음의 여유가 나오는가 보다'라고 해석이 됐고, 마이크에 대고 '메롱'을 하는 메리언의 당당한 모습도 '엄마, 아빠랑 같이 있는 시간이 기니까 저렇게 아이가 자신감이 있나' 싶었다. 심지어, 돌발 상황 당시 BBC 앵커가 켈리 교수에게 "어... 당신 딸이 지금 방에 들어온 것 같네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뉴스 프로그램에서 저렇게 관대하고 여유 있게 멘트를 하다니, 저 앵커도 집에서 좋은 아빠인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했다. 메리언의 핑크색 안경은, 이렇게 나를 자격지심과 피해망상 덩어리로 만들었다.


케이시 윅스의 책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는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요즘 우리 부부의 최대 관심사이다. 뭘까, 우리를 이렇게 살게 만드는 것은. (좋은 책이다. 여유 되면 읽어 보시길 권한다.) 저자에 따르면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가 풀타임 근무의 표준이 된 건 2차 세계대전 직후라고 한다. 그리고 그 표준은, 당시 대개의 노동자(=남성)가 '집안의 여성으로부터 보조를 받는다'는 가정 하에 설정된 것이라고 한다.


<남성노동자가 무급 가사노동을 책임져야 했다면, 그가 하루에 최소 8시간 일해야 한다고 확실히 요구받았을 것으로 상상하기는 어렵다. 줄리엣 쇼어가 주장했듯이 젠더 분업이 없었고 역사의 바로 그 시점에 가구 내 재생산노동을 풀타임으로 담당하는 여성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면, 이런 노동시간제는 결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풀타임과 시간외근무 모두 다른 누군가가 가정 내 노동의 주된 책임을 맡아 줄 수 있다고 가정할 때에만 합리적인 선택지로서 통과될 수 있다.> - 케이시 윅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255-256p


케이시 윅스의 요구는 두 가지이다.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과 주 30시간 노동. 나와 남편이 이 사회에서 노동자로 기능하는 동안 그런 시대가 올까. 적어도 지금으로선 요원해 보인다. '하루 8시간 노동'이 불가능한 상황(가정 내 노동 담당자의 부재)으로 바뀌었는데 사회는 여전히 그 시절에 정했던 노동 시간을 요구하는 셈이다. 남편의 회사는 7월달에 보너스를 준다. 남편은 그 때 까지만 다니고 퇴직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내심, 그가 이번에는 정말 실행에 옮기기를 바라고 있다. 결국 우리는 '젠더 분업' 시대로 역행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시어도어 젤딘의 책 <인생의 발견>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 일상의 중압감에 눌려서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대화를 회피할 때가 많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장 적게 논의한다.' 나와 남편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아무리 사는 게 바빠도 이 중요한 문제를 논의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실수를 다시 하지 않을 수 있을지, 우리는 이 잔인한 노동 시간이 일상인 나라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사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라는 책에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책을 인용한 것이 저의 오독 혹은 오인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 덧붙일 말이 없진 않지만 설익은 변명 같아 적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대로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고 좀 더 고민해본 후 글을 다듬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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