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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Apr 15. 2017

내가 살고 싶은 집

1.

<인간에게 꼭 필요하지만 결여된 부분을 동물이 해줍니다. 예를 들어 성인이 되면 친밀한 행위를 별로 안 하죠. 아빠 왔다고 가서 핥아주고 그러지 않잖아요. 그런데 개는 그렇게 하고, 그럼으로써 서로의 본성에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는 거죠.>

-소설가 김영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내가 받았던 것을 이 아이에게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동물에 대한 경험이다. 내 딸들을 동물과 같이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난 시골에서 자라서 늘 동물과 함께 살았다. 마당에 개를 길렀고, 외양간엔 소가 있었고(적게는 2마리 어떨 땐 10마리쯤), 가끔은 닭도 키웠다. 비가 오면 당연하게 지렁이와 달팽이가 눈에 띄었고, 장마 땐 어디서 왔는지 모를 개구리가 마당을 뛰어다녔다. 헛간에 쥐가 들면 엄마는 동네 어느 집에서 고양이를 빌려(!)와서 며칠 집에 두었다. 어린 송아지에게 우유병(손잡이가 달린 젖병이다)을 물려 주며 바라봤던 맑은 눈동자, 송아지의 입 안에 손을 넣고 내 손바닥을 쪽쪽 빨게 했을 때의 그 까끌한 감촉 같은 건 내 또래에서 흔히 갖기 힘든 기억일 거라고 자부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키우던 검둥개가 죽었고, 5학년 때 송아지가 팔려갔다. 그리고 사춘기 때 나는 이런 내용의 일기를 썼었다. <왜 동물은 사람보다 빨리 죽을까. 왜 짐승의 수명은 인간보다 짧을까.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이 무엇인지 보게 하기 위한 신의 뜻은 아닐까. 동물의 죽음을 목격하며, 사람은 막연하게나마 자신의 마지막을 짐작할 수 있다.> 어릴 적 내가 만났던 동물들의 모습은 생각지 못했던 순간에 불쑥불쑥 기억에서 튀어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들이 살아 있는 생명체였음을, 내가 인지했듯 아니든 나와 '관계'를 맺었던 '존재'들이었음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이런 어린 시절 때문인지 나는 커서도 내 공간에 종종 동물을 들여놓았다. 삭막한 기숙사에서 외로움 타던 대학 어느 시기에는 토끼를 길렀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동물, 외부에 들키지 않고 기를 수 있는 동물, 그러면서도 보송보송한 녀석의 살갗을 만질 수 있는 동물이 뭘까 궁리하다가 찾아낸 게 토끼였다. 회사에 입사하고 경제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는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고양이를 입양했었다. 하율이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우리 집에 살던 녀석이다.

동물을 기를 수 있는 집에 살고 싶다. 하율이에게도 동물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 구경하는 것 말고 관계맺는 것 말이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말대로 '인간 본성의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 주는' 그 충만한 느낌을 맛보게 해 주고 싶다. 내가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 백 가지 이유 중 첫 번째이다.


2.

날씨가 변하는 걸 눈치챌 수 있는 집에 살고 싶다. 장마철, 별안간 바깥이 캄캄해지고 번개가 번쩍 하면서 비가 쏟아지는 순간을 볼 수 있는, 후두둑 하는 첫 한두 방울의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집. 성인이 되어 서울살이를 시작하고부터는 '첫 빗방울'을 감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늘 문득 고개를 들면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그게 못내 아쉽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은 창문이 많았다. 한겨울,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뭔가 심상치않은 기분이 들어 창을 열어 보면 여지없이 밤 사이에 눈이 와 있었다. 눈이 온 다음날은 하여튼 분위기가 달랐다. 눈은 소리를 내진 않지만 분명 묘한 기운을 내뿜는데, 내가 살던 시골집은 그걸 느낄 수 있을 만큼 땅에 가까이 있었다. 밖에 나와야만 아, 비가 왔구나, 눈이 왔었구나, 하고 알 수 있는 집이 아니라, 공기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바깥을 향해 기웃기웃 고개를 내밀고 있는 집이라고나 할까.


3.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해에 아버지는 집을 지었다. 방 세 개, 3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단층집이었는데, 그 집을 지으면서 나와 여동생은 방을 갖게 됐다. 새 집으로 짐을 옮기고 얼마 후, 온 가족이 함께 내 방의 가구를 고르러 가구단지에 갔었다.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며, 책상과 책장, 옷장을 사 주셨다. 나와 동생이 직접 골랐다. 아빠가 가구집 사장님과 가격 흥정을 하던 모습도 생생하다. 배송 안 해 줘도 된다고, 우리 트럭에 직접 싣고 갈 테니 좀 빼 달라고 한참을 실갱이하신 끝에 우리는 드디어 하얀 포터 트럭에 전리품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새 집, 처음 가져보는 내 방, 첫 책상... 학교에 다니게 된다는 건 뭔가 중요한 사건이구나,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구나, 엄마 아빠도 나를 이제 다 큰 애로 취급해 주는구나, 이런 생각들 속에서 나는 여덟 살을 맞이했다. 초등학교 입학은 내 방을 갖는다는 뜻이었고, 책상을 고르던 날의 풍경과 맞물려 내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말하자면 책상을 고르는 행사는 내가 인생의 어떤 한 단계를 넘어섰음을 인정하는 '의식' 같이 느껴졌다.

하율이는 여섯 살인데, 아직 자기 방이 없다. 안방에 침대 두 개를 붙여 두고 네 식구가 다 같이 잔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맞벌이 부부인 나와 남편은 하루에 길어야 2-3시간 아이와 함께 있을 뿐인데, 잠이라도 아이들과 같이 자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율이와 하린이도 처음 자기 방을 갖게 되던 날의 추억을 갖게 하고 싶었다. 방에 가구가 들어오는 걸 바라보며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흥분했던 환희를, 처음 내 방에서 부모님 없이 잠자리에 들었던 그 밤의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 그 흥분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하율이와 하린이가 일정한 나이가 될 때 까지 방을 주면 안 된다. '내 공간'에 대한 간절함이 고조되는 타이밍에 짜잔! 하고 첫 방을 줘야만 한다. 나는 내심 그걸 초등학교 입학 즈음으로 계획하고 있다.   

인테리어 블로그에서 북유럽 스타일로 아기자기하게 디자인한 아기방을 볼 때, 하율이 친구 집에 놀러가서 장난감이 착착 정리돼 있는 아이방을 볼 때, 하율이와 하린이에게도 그렇게 예쁘게 방을 꾸며주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꾸욱 참고 있다. 결핍 이후에라야 느낄수 있는 종류의 기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율이가 처음으로 자기 방을 갖게 되는 날, 나는 이제 더이상 하율이와 함께 잘 수 없음을 아쉬워 하고, 하율이는 드디어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것에 설레어 했으면 좋겠다. 그 날 느낄 그 모든 감정들이 나는 참 기대된다. 다음 집에서는 하율이의 방을 만들어 주고 싶다.  


4.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 이유가 백가지 정도라면 단독주택에 살면 안 되는 이유는 천 가지 쯤 될 것이다. 매매가 잘 되지 않는다, 택배 받아 줄 경비원이 없다, 주변에 학교와 학원이 많은 곳이 드물다, 관리하는 데 손이 많이 간다, 난방비가 많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땅 사고 집 짓는 기간 동안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

회사 선배 중에 파주 어드메에 손수 집을 짓고 살고 계신 분이 있다. 자제분들이 중고등학생인지라 한번 물어봤었다. "주변에 학원같은 것 많이 없지 않나요?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세요??" 그 분이 시원하게 대답하셨다. "뭐 하나는 포기 해야지~" 학원을 포기한 그 과감한 결단력에 새삼 그 분이 달리 보였다. 이렇게 쿨할 수가. 그러니 다시 공은 내게로 넘어오는 것이다. 너는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내년에 하율이는 일곱 살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장기적인 주거 지역을 결정할 참인데, 여전히 내게는 어려운 질문이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에게 집의 기억이 선명히 남아 있을 것이기에 선택이 더욱 어렵다. 욕심만 많다. 아이들이 편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집이었으면. 어지르고 치우는 데 선택권을 줄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죄책감 없이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집이었으면, 그래서 내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 입구에서부터 하율이의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아침에 눈 떴을 때 휴대폰 어플이 아니라 창 밖 풍경으로 날씨를 가늠할 수 있는 집이었으면, 마당이나 옥상 혹은 베란다에 고기를 구워 먹을 공간이 있었으면, 친구네 식구들을 초대해서 놀 수 있는 면적이었으면. 무엇보다, 나중에 하율이와 하린이가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연결될 만큼 오래오래 살 수 있는 집이었으면...


P.S 아무리 생각해도 전세 기간이 2년인 건 말이 안 된다. 짐 푸는 데 1년, 짐 싸는 데 1년이던데,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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