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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Nov 06. 2017

인생의 계획을 수정한다는 것

- mbc 파업콘서트 후기

지난 10월25일, 시청 앞 잔디밭에서 MBC 파업 콘서트가 있었다. 평일 저녁, 추운 날씨였는데도 7000여 분의 시민들이 오셔서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마음을 보태 주셨다. (진심으로, 마음 다해 감사드립니다. 방송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내내, 그 날의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무대에 섰던 많은 출연자들 중 MBC를 떠난 그리운 얼굴들, 박혜진, 문지애, 김소영 아나운서의 모습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그들의 퇴사가 강요된 자의, 사실상의 해고, 너무도 아픈 선택이었음을, 내가 '안다'고 말해도 실례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언론이 망가지던 지난 9년,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의 인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선배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의 인생도 원래의 계획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슬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계신 많은 시민분들과, 지난 9년, 함께 싸워왔던 많은 동료들이 이제는 승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게 인생에 더욱 빛나는 기쁨을 만들어 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대에서, 김소영 아나운서가 했던 말이다. 그녀는 최근 북카페를 창업한 모양이다. 뉴스 앵커, 심야 라디오 프로DJ, 문화 프로그램 진행자, 예능 프로 게스트, 어디에 놓아 두어도 더없이 훌륭했던 젊은 아나운서, '전도유망'이라는 단어는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을 만큼 앞날이 기대됐던 방송인이, 그녀의 말 그대로 '인생이 바뀐' 것이다. 아마 '방송 바닥'에 있는 그 누구도 그녀가 방송가에서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북카페 주인이라는 직업은 그녀의 풍성한 삶의 모습 중 하나일 것이고, 더 넓고 깊어진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나리라고 믿는다. 그녀와 한 번이라도 프로그램을 해 봤던 사람이라면, 그녀가 진행하는 방송을 한 번이라도 보거나 들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기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인생이 달라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김소영 아나운서가 2012년 170일 파업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면, SNS에 사회적 이슈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적지 않았다면, 그래서 경영진의 눈밖에 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다른 무엇이 아닌 아나운서로서의 방송 진행 능력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었더라면, 과연 회사를 그만두고 북카페를 창업하는 일을 계획했겠는가.

언론이 망가져가던 기간 동안 본인의 인생도 바뀌었다는 말, 자신의 인생이 '원래의 계획'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그녀가, 나는 참 예뻐 보였다. 기자, 피디, 아나운서로서 이러이러한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욕심, 아마 MBC 직원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지금 파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계획을 수정한 사람들이다. 불법과 부당함이 판치는 MBC를 보며 이렇게는 더 이상 방송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이다. 파업을 하기 위해 입사한 사람은 없다. 김소영 아나운서의 말대로, 언론이 망가지면서, 많은 MBC 직원들의 인생이 계획과는 달라졌을 뿐이다.
나는 언론이 망가지는 것과 상관 없이 본인의 원래 인생 계획을 고수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몇 알고 있다. 어떻게 되어도 기자이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앵커 자리에서 내려올 수 없다는 사람, 오히려 이참에 '성공'의 기회를 잡아보려는 사람,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인생의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것인지. 하여 나는 삶을 대하는 대원칙 하나를 수립하게 되었다. 필요하다면, 계획은 바꿀 수 있다고. 아니, 바꿔야 하는 타이밍에 눈 감으면 안 된다고.

돌이켜 보면, 사실 인생에서 '계획'이라는 말은 무의미할 때가 많지 않았던가. 어느 대학엘 가겠다, 어느 회사에 입사하겠다, 언제 결혼하고 언제 쯤 아이를 낳겠다, 이게 어디 계획한다고 되는 일이던가 말이다. 뽑아줘야 가는 거고, 결혼할 만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거고, 아이가 생겨야 낳는 것이지. '지금이구나!'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 그 순간에 제대로 반응하는 것이 인생을 대하는 적절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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