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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Nov 16. 2018

섭외의 지겨움

신형철 평론가가 평론가를 일컬어 ‘감동에 저항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위악적으로 말하면, 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피디라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좀 위악적으로 표현해 볼까. 자신 없을 때도 확신에 찬 듯 방향을 가리켜야 하고, 연예인 특유의 아우라에 감탄할 때도 대수롭지 않은 듯 여상한 말투를 구사해야 하며, 모르는 것도 아는 듯, 당황할 때도 아닌 듯, 친한 사람과도 안 친한 척 처음 보는 사람과도 절친인 척, 감정의 동요를 감추는 법을 야메로 배워 어설피 실행하는 사람들.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있어 보이려고, 방송에 뭣도 없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이 애처로운, 남산 아래 딸깍발이같은 망국의 말단 선비들.

네, 요즘 좀 힘듭니다. 냉소라도 해야 덜 비참한 것 같은 날들입니다. 농담 반 섞어서 ‘1일 까임 제한 횟수’를 두겠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하루에 세번 이상 까이지 않겠다, 3회 채웠으면 이제 섭외는 그만 하는 게 내 멘탈을 보존하는 길이다, 라고요. 섭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거절하는 일도, 거절 당하는 일도 마음이 상하는데 어떻게 된 게 이건 십년을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섭외하는 일은 공일오비 노래 <신인류의 사랑> 가사 같습니다.

‘내  맘에 안드는 그녀에게 계속 전화가 오고, 내가 전화 하는 그녀는 나를 피하려 하고. 거리엔 괜찮은 사람 많은데 소개를 받으러 나간 자리엔 어디서 이런 여자들만 나오는거야’

부디 오늘은, 다른 친구들처럼
맘에 드는 누군가를 사귀어보는 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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