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연 Nov 20. 2018

전성기는 아니지만...

-나도 쓴다, 보헤미안 랩소디 후기


MBC 라디오국을 쇠락해가는 왕조에 비유하면, 우리 본부장님께 야단맞으려나.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종로나 시청 같은 강북 구도심. 건너편에 새 아파트가 우뚝우뚝 올라가는 게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옛날동네. 후암동, 망원동, 옥수동. 이태원 말고 해방촌, 판교 말고 과천. 사람으로 치면 대략 50대 언저리. 체력도, 외모도, 감각도 점점 기울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나이. 20대라 해도, 튜브톱 입고 클럽 다니는 잘 나가는 젊은이보다는 Thursday Islnad 풍의 플레어스커트 입고 재미없는 소설책 읽는, 누구는 순수하다 하고 누구는 촌스럽다 할 만한 캐릭터.
언젠가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인 이진우 기자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기자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고용주가 아닌 고용인의 입장에서, 일하는 회사가 오름세냐 내림세냐도 중요하지만 그 회사가 속한 산업 자체가 상승하는 분야냐 기우는 분야냐가 노동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고. 크게 공감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힘들구나! 한방에 이해했다. (더 말하고 싶지만 그럼 진짜 누구에게라도 야단맞을 것 같아서 그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내가 울컥한 장면은 <Radio Gaga>라는 노래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I'd sit alone and watch your light
난 혼자서 앉아 불빛을 지켜봐
My only friend through teenage nights
오늘 밤 그것은 내게 유일한 친구
And ev'rything I had to know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I heard it on my radio
라디오에서 들었어
You gave them all those old time stars
넌 내게 옛 스타의 노래를 들려주었지
Through wars of worlds - invaded by Mars
세상의 전쟁 속에서 - 화성의 침입 속에서
You made 'em laugh - you made 'em cry
넌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어
You made us feel like we could fly
우리가 날 수 있다고 믿게 해주었어
Radio
라디오

그리고 이 문장.

Radio someone still loves you
라디오 아직도 누군가 널 사랑해

라디오는 인간을, 삶을 참 많이 닮은 매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전성기가 지났다는 점 때문이다. 살면서, ‘지금이 내 전성기다!’라고 느꼈던 순간을 선명히 떠올리기가 힘들다. 대체로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아온 인생인 것 같은데, 좋았던 순간에도 ‘지금이 전성기다’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다. 전성기가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지나간 사람들 뿐이다. ‘아직’은 아직대로, ‘이미’는 이미대로 저마다 삶이 힘들다. 그래서 요즘은, 혹시 인생이라는 게, 전성기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본질, 삶의 본질은 ‘전성기가 지났음’에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이 당신 인생의 전성기에요!”라고 말하는 자기계발 강사들의  독려가 공허한 이유는, 전성기라는 단어가 본래 ‘지금’과는 공존하기 힘들기 때문은 아닐까.

<Radio Gaga> 가사 중엔 이런 부분도 있다.

You had your time you had the power
넌 전성기가 있었고 힘을 가졌었지
You've yet to have your finest hour Radio
너의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어 라디오

라디오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전쟁의 끝과 달 착륙 소식을 전하던 그 언젠가? 노래처럼 최고의 시간이 다시 올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금은 아니다. 라디오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바로 그래서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청춘들처럼 라디오도 아직 전성기를 기다리는 중이고, 지친 어른들처럼 라디오도 언젠가 있었던 화양연화의 기억을 남몰래 쓰다듬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당신의 마음과 공명하기 때문에.

전성기 하니까 급 생각난, 올해 이승환 ‘차카게살자’ 콘서트 타이틀. 우리, 그때.
작가의 이전글 섭외의 지겨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