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연출하고 있는 프로그램 <꿈꾸는 라디오>에는 ‘꿈꾸라 대나무숲’이라는 코너가 있다. 청취자들의 고민 사연, 비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코너인데,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다시 듣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왜? 대나무숲이니까. 비밀이 보장되는 안전한 곳이니까.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시공간처럼 순식간에 나타났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릴라성 코너였으면 했던 게 애초 기획이었다. “오늘, 꿈꾸라 대나무숲, 열립니다”라는 말이 신호가 되어 그 순간부터 주고받는 말들은 다시듣기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상상했는데, 현실에서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구현되지는 않았고 다만 고정게스트 이준오 씨의 존재가 청취자들 사이에서 ‘있다고는 하는데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유니콘 같은 이미지가 되기는 했다.
다시듣기가 없다는 생각은 사연을 쓰는 청취자 뿐 아니라 디제이와 게스트에게도 약간의 자유를 더 주는 것 같다. 특히 가족으로 인한 고민이나 연애 사연들처럼 연예인이 방송에서 ‘솔직한 모진 말’을 하기 어려운 주제일 때 “이건 진짜 다시듣기가 없어서 하는 말인데...”라고 말을 꺼내며 사연 보낸 청취자에게 직언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기술이 지금처럼 좋아지기 전, 본래 방송의 특징 중 하나는 ‘휘발성’이었다. 전파를 통해 broad 하게 casting 되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이게 기존의 인쇄매체와 다른 점이자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정체 모를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주범이었다. 20년, 30년 동안 매일같이 방송을 만들었는데 그 결과물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아쉬움에 대해 선배들은 이따금씩 토로했고,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일했다면,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었다면, 영화 필름이라도 손에 쥘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얘기하기도 했다. 제작자 뿐 아니라 청취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공테이프를 끼우고 조심스레 녹음 버튼을 누르던 마음은 흘러가버릴 시간을 붙잡으려는, 디제이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이 순간의 증거를 남겨두려는, 전파라는 허깨비가 사라진 뒤에 찾아올 망각에 저항하려는 애틋함이었다. 라디오라는 매체를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은 결국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누구도 인터넷을 애틋해 한다거나 케이블티비를 그리워하지는 않는데 유독 라디오는 마치 사람이라도 되는 양 감정을 품는다. 매일 함께해서, 일상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아서, 마음을 나눠서,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서. 우정처럼, 시간처럼, 삶처럼.
언제든지 다시 찾아들을 수 있다는 편리함이 앗아간 그 무언가를 잠시라도 느껴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인위적인 퇴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시간, 다시듣기를 없앴다. 청취자들이 아쉬워하기를 바랬다. 그 코너를 다시 들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기를, 곰녹음기든 뭐든 ‘현대판 공테이프’를 궁리하기를, 녹음한 파일을 청취자들끼리 돌려 듣기를 상상했다. 그가 가진 매력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면, 그의 결핍을 아파하며 사랑이 깊어지는 법 아니던가. 아이돌 디제이의 어린 팬들도 라디오라는 매체를 사랑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코너를 짜고 장치를 고민했던게..... 벌써 8개월 전이다. 사라지고 휘발되고 잊혀진 자리에 남아있는 한줌의 기억, 그 만큼이 진짜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감정의 몫 아닐까. 다시듣기 하지 않아도 기억나는 그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