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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Jan 06. 2019

막방과 첫방은 하루 차이

오늘은 요섭이와 마지막 방송을 하는 날이다. 이별 노래를 종류별로 들으면서(빠른 곡, 느린 곡, 남자 보컬, 여자 보컬...) 막방 큐시트를 짰다. 방송에서 쓸 청취자 컷을 편집하고, 슬픈 BG를 찾아두고, 마지막으로 요섭이에게 줄 편지를 적고난 뒤..... 이제 첫 방송을 준비한다. 내일부터 바뀌게 될 코너의 코드음악, 로고송, 홈페이지... 오늘 생방송을 끝내고 쫑파티까지 하고 나면 내일 컨디션이 안 좋을 게 뻔하므로, 오늘 미리 해 둬야 한다. 막방을 준비하며 눈물 줄줄 흘리다가 내일 새 DJ와 함께 할 첫 방송의 회의를 하려니, 같이 일하는 작가가 그런다. “피디님... 바람 피는 기분이에요...”


이래서 라디오가 삶과 닮았다는 거다. 줄기차게 찾아오는 내일. 잔인하도록 성실한 시간의 흐름. 이런 날은, 이렇게 특별한 날은 잠시 쉬었다가 흘러가도 될 텐데 봐주는 것 없이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 매일매일이다. 라디오도, 삶도. 


방송을 하다보면 가끔, 망할 게 예상되는 날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받은 신인이 게스트로 나오는 날, DJ가 컨디션이 유달리 안 좋은 날, 코너 구성을 미처 탄탄하게 준비하지 못한 날, 이런저런 이유로 아침에 출근하면서부터 ‘아, 오늘 방송은 진짜 별로일 텐데...’싶은 날이 있다. 그래도 가서 해야 한다. 망할 게 분명한 방송이래도, 가서 꾸역꾸역 두 시간을 채워 넣어야 한다. 인생이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내 상태가 어떻든 개의치 않고 오늘은 지나가고 내일이 다가온다. 참 공평하게 무심하다. 


김건모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싸이의 노래 <아름다운 이별 2 (Feat. 이재훈)> 가사가 생각난다.


이 와중에 배가 고프니 미쳤나보다 

이별 하고 나도 그래도 배고프다고 밥 먹는 걸 보니 나도 사람인가보다


인생을 표현하는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이 와중에’가 아닐까. 상중에도 밥을 먹고 농담을 한다. 이 와중에 배가 고프고, 이와중에 애는 보채고, 이와중에 돈은 벌어야 하고, 저 남자는 잘생겼고, 버스 놓칠까봐 뛰어야 하고.... 그렇다, 언제나. 


"우리가 놓지도, 우리를 놓지도 않았는데 이별해야하는 나의 특별한 DJ에게."


라고 편지의 첫 줄을 써 놓고 훌쩍거렸는데, 이와중에 내일부터 사용할 로고송의 파일 상태가 안 좋아 다시 보내달라고 전화를 했다. 라디오는 참, 삶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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