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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Hur Jun 12. 2017

Erlich Kim

Chief Cheerleading Officer

드라마나 영화에 내 삶과 비슷한 점이 있으면 훨씬 더 재미있게 보게 된다. 2016년 6월에 Season 3이 끝난 미국 드라마 Silicon Valley가 그렇다. 한마디로 미치게 재미있다.             

Silicon Valley에 나오는 Startup company, Pied piper의 주인공들

주인공 Richard(위 사진에서 가운데)는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비손실 데이터 압축 기술을 개발했고, 그걸로 본인의 스타트업 회사 'Pied piper'를 시작한다. 비디오와 오디오에 모두 적용할 수 있고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실리콘 밸리에서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투자 계약서에 있는 복잡 미묘한 조항, 쓰레기 같은 성격의 투자자, 기술 유출, 대기업과의 소송 등의 문제로 바닥을 쳤다가, 극적으로 극복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바닥을 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중이다.


이 회사는 Erlich Bachman(가장 오른쪽)의 incubator에서 시작했다. 수염, 머리카락, 그리고 저 요상한 눈빛이 말해주듯이 성격 참 특이한 인물이다. 자기 집 방 한 칸 내어주고 생활을 할 수 있게 지원(예를 들면, 집에 있는 씨리얼을 먹게 해 줌)하는 대신 회사 지분의 10%를 가져간다. 좋은 기술을 알아보는 능력도 없다. 


Richard에게 알고리듬 개발은 집어치우고, 사람들이 환장하는 앱이나 만들라고 할 정도. 하지만, 이 바닥의 생리를 잘 알고 있어서 본인만의 방법(주로 허풍, 협박, 심리전)으로 큰 투자를 물어오기도 하고 회사의 자잘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Richard가 가끔 정신적으로 의지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Pied Piper에 중요한 인물이다.


사실 스타트업 회사는 내 아내가 하고 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아 생활비를 대고, 아내는 본인의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해서 성장시키고 있다. 내 주변에는 이런 가족이 꽤 된다. 내 아내는 내가 태어나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성격이 온화하고 안정된 사람이었다. 아직도 그렇기는 하지만, 요즘 익숙하지 않은 일들(계약, 협상, 피치)을 많이 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다. 가끔 짜증도 내고, 표정이 굳어 있기도 하다. 사실, 아내는 회사를 시작하기 전에 본인에게 잘 맞는 연구소에서 잡 오퍼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포기했다. 그 전에도 인터뷰가 진행 중인 연구소가 있었는데, 나와 결혼하면서 엘에이에 머무르기로 했다. 물론 나에게도 이렇게 오퍼나 인터뷰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걸 두고 two-body problem이라고 하는데, 미국 맞벌이 부부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을 수가 있을까. 내 가슴 한 구석에는 작은 돌덩이 하나가 가라앉아 있다.


아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내가 그나마 해주는 건, 잘하고 있다는 격려와 응원 밖에는 없다. 가끔 고민거리가 있을 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오면, 내 생각을 말해주기도 한다. 스타트업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물론 별 도움은 안된다. 그런 영양가 없는 말도 아내는 고맙게 들어주고, 곧 기분이 풀리기도 한다. 작년에 아내가 회사를 시작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할 때, 나는 본인의 회사를 키워나가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는 참 잘 해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아내가 힘들어 보일 때에는, 내가 괜한 말을 했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내 아내가 누구보다 잘 해나가고 있다는 걸 안다. Pied Piper도 겪었던, 초기 스타트업에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잘 피해왔다. 행운도 참 많이 따랐다. 언젠가 유모차를 끌며 Silicon Valley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내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여보는 나의 바크만이에요"


"응? 바크만이 누구에요?"


"Erlich Bachman이요. 하하하. 내 회사의 인큐베이터. 정신적 지주."


"하하. 그러면 저 CCO 시켜주세요. Chief Cheerleading Officer."


웃자고 꺼낸 유치한 대화였지만, Erlich Kim이 왠지 듣기 좋다. 닮은 구석이 조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튀어나온 뱃살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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